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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팍스 아메리카나'?…'이·팔 전쟁'에 앞당겨진 '가치 외교' 시험대


입력 2023.10.14 06:00 수정 2023.10.14 06:00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NYT "다극화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

주춤하는 미국 속 '팍스 시니카' 부흥 꿈꾸는 中

전문가들 "미국 영향력 축소시 핵무장 등 고민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갈라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대통령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대(對)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무력 충돌은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패권, 즉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가치 외교' 기조 아래 미국과 '초밀착 관계'를 지향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섬세한 외교전략 조정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뉴욕타임즈(NYT)는 최근 뉴스레터를 통해 "하마스의 공격은 세계가 새로운 혼란의 시대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세계가 '다극화 체제'라는 새 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하마스와 같은 일부 정치 집단과 국가들은 자신들의 역내 영향력이 미국보다 더 크다고 믿으며 자국의 이익을 위한 공격적 결정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아프리카 국가의 잇단 쿠테타, 인도의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의 대두, 중국과 대만 갈등 등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이 이러한 맥락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힘이 전과 같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웠고, 이는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던 미국이 스스로 그 독보적 위치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시대가 열리며 '미국의 귀환'을 외쳤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 등 보호주의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영향력 회복은 요원해졌다는 주장이다.


中, '일대일로(一帶一路)' 10주년 포럼 개최
'중동 중재자' 자처 나서기도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는 틈을 타 중국은 '팍스 시니카(중국이 지배하는 세계질서)'의 재부흥을 꿈꾸고 있다.


중국은 오는 17~18일 베이징에서 '제3회 일대일로 정상 포럼’을 개최한다.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지난 13일 신화통신·중국중앙TV(CCTV)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140개국·30개 국제기구에서 국가 지도자, 국제기구 담당자, 각국 장관급 인사, 싱크탱크 관계자 등 4000여 명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2년 말 권좌에 오른 뒤 2013년부터 추진한 중국-중앙아시아-유럽 간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이다. 참여국에 도로와 철도를 깔고 항만과 공항을 짓는 인프라 협력이 핵심으로, 중국의 '대국 굴기'를 현실화하려는 대외 확장 전략으로 평가된다.


마 부부장은 이번 정상포럼이 과거 진행된 두 차례 포럼보다 훨씬 다양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했다. 2017년 열린 제1회 포럼엔 아프리카·중남미·유라시아 등 28개국에서 정상급 대표단이 참석했고, 2019년 제2회 포럼엔 세계 37개국 지도자를 포함해 5000여 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제안 1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3회 포럼 규모를 키우려 노력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번 정상포럼에 공식 초청을 받지 않아 별도 대표단을 보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 지도자들도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국면에서도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며 '중재자'의 위치를 노리고 있다. 미국의 중동 지역 영향력이 줄어든 틈을 타 중동 지역 정권과 우호적 관계를 강화해오던 중국에겐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지난 1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자이쥔 중국 중동특사는 팔레스타인 외교부 제1차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계속해서 휴전을 이끌고 인도적 위기 완화를 도울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협상을 중재·촉구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전면적이고 공정하며 항구적인 해결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미국 패권 약화 속 발발한 '이·팔 전쟁'…尹 '가치 외교' 조정 불가피


'이·팔 전쟁'의 발발로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미국이 잇따른 전쟁 속에서 억지 역량의 부족을 드러내면서 대표적 우방국인 우리 외교에 영향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취임 초부터 사실상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가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 동참하겠다는 의미의 '가치 연대' '가치 동맹'을 외교·안보의 기본 방향으로 내세웠다.


실제 '중동 외교'에 힘을 쏟고 있던 윤 정부는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본래 다음 주로 예정돼 있던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방한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연기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UAE 국빈방문 때 무함마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3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에너지·건설·바이오 분야 등에 290억 달러(약 40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빈살만 왕세자도 13일 대표적 반미(反美) 국가인 이란과의 통화에서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중동외교에 '노란불'이 켜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단순히 동맹국가와의 '초밀착'을 기조로 했던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전략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미국 상원의원 대표단을 만나 하마스의 무차별적 공격을 규탄하며 미국과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는 상태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국하고 우리가 같은 편이 돼 압박한다면 미국보다 때리기 쉬운 우리에게 그 영향력이 갈 수 밖에 없다"며 "미국에 동조하는 정도를 약간 조정하는 제스처라도 취하는 등의 절제된 행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이 만일 '지원에 한계가 있다'라고 했을 때 우리의 국방은 어떻게 되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우리가 자체 방어할 수 있는 핵무장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질 때"라고 강조했다.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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