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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지만 강렬하게 '캔디드 샷' [D:쇼트 시네마(72)]


입력 2024.04.17 08:43 수정 2024.04.17 08:43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강민지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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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류경수 분)이 찍은 찰나의 순간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일찍이 성공했고, 이번에도 화려한 사진전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희준의 창작에는 그만 아는 비밀이 있다. 희준의 카메라에 찍힌 사진은 모두 '연출'이다.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걸 기다리는 노숙자의 위태로운 눈빛은, 희준이 돈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뇌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전시하며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시키는 희준의 방식은 창작자로서 가지는 임무이자 과제일테지만, 처음부터 거짓으로 꾸며졌을 땐 다른 이야기가 된다. 희준이 제시하는 담론은 물론 사람들이 받은 울림과 공감도 모두 '가짜'가 되어버린다.


희준은 자신의 이런 행위가 부끄러운 행위라는 걸 학창 시절 자신이 찍은 친구 진영(방태원 분)의 사진으로부터 다시금 깨닫는다. 앨범 속에서 발견한 진영의 모습은 학교 폭력을 당하던 모습이다. 이 모습을 찍은 건 희준이며, 진영은 원망과 분노의 눈빛으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다. 희준은 친구에게 진영의 안부를 물었지만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에 잠긴다.


친구들에게 맞고 있는 진영을 발견하고 말리기 보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모습, 비겁하게 사진을 찍지 말라는 진영의 화내는 모습 등이 스쳐 지나간다.


진영의 사망 소식에 알 수 없는 부채감이 생긴 것일까. 희준은 어느 날과 같이 지하철 역에서 떨어지려는 노숙자를 촬영하려는 순간, 이번에는 셔터를 누르지 않고 노숙자를 향해 달려간다.


'캔디드 샷'(candid shot)은 몰래 찍은 사진이다. 피사체는 찍히고 있는 사실을 몰라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창작자의 자유와 양심 사이의 줄타기를 넘어, 그 이상의 욕심을 낼 때 생길 수 있는 에피소드다. 많은 것들이 생략됐지만 어렵지 않고 직선적으로 뻗어나가며 영화는 희준의 카메라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카메라 밖에서 모든 걸 만들어가던 인물이, 프레임 안으로 말을 건네는 마지막 엔딩이,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러닝타임 8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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