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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요구 거세지만…임금피크제 폐지 논란으로 '자승자박'


입력 2024.05.23 06:00 수정 2024.05.23 10:53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주요 기업 노조, 임단협 요구조건에 정년연장 포함

기업들, 비용부담에 난색…"임금체계 개편 선행돼야"

2013년 정년연장 당시 도입된 임금피크제 폐지 요구로 거부감 더 커져

근로자의 날인 1일 대구시의회 앞 5차선 도로에서 열린 ‘2024 세계노동절 대구대회’에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기대수명 증가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에 따라 정년연장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노동계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시기에 맞춰 정년도 연장해야 된다는 입장이지만, 기업들은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비용 부담만 심화되는 정년 장은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3년 정년연장(만 58→60세) 당시 부작용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같이 도입된 임금피크제에 대해 주요 기업 노동조합들이 폐지 주장을 펴고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임금체계 개선을 전제로 한 정년연장 논의는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 HD현대중공업 등 주요 기업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 요구안에 정년연장을 포함시켰다.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현재 63세에서 2033년 65세로 연장되는 것에 맞춰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만 64세로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통상 현대차 노조와 보조를 맞춰 온 기아 노조(금속노조 기아차 지부)도 현재 마련 중인 요구안에 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한 정연 연장을 요구할 것이 확실시된다.


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HD현대미포 등 HD현대 조선 3사 노조도 올해 단체교섭 공동요구안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고령 인력을 관리함에 있어 겪는 애로사항 (복수응답). ⓒ대한상공회의소

이같은 노동계의 움직임과 달리 기업들은 정년 연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당장 정년 연장이 이뤄질 경우 우선 적용 대상이 될 300인 이상 대기업들조차 정년연장이 논의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00인 이상 대기업 255개사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대기업의 중고령 인력 운영 실태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은 29.4%에 불과했으며, 이 중 10.2%만이 정규직으로 계속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중고령 인력 관리에 애로가 많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특히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높은 인건비 부담(37.6%)을 꼽았다. 중고령 인력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조치로는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33.9%)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유일호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최근 연금개혁 시 연금수령연령에 맞춰 60세 이상 고용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대기업 내 고령인력 인사제도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의 고용연장은 양질의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면서 “고용연장을 위한 직무성과중심의 임금체계로의 개편과 근로조건의 유연성을 높이는 제도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국제강 노사가 25일 인천공장에서 ‘2024 임금 및 단체협약 조인식’을 개최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국제강

실제 최근 정년연장의 대표적 사례인 동국제강그룹의 경우 정년을 단계별로 늘리면서 만 60세부터 총 임금의 10%가량을 줄이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올해 임단협에서 정년을 만 62세까지 연장하는 데 노사가 순탄하게 합의했다.


정년연장 개념은 아니지만 현대차와 기아에도 시니어 촉탁제(현대차), 베테랑(기아)과 같은 퇴직자 재고용을 통해 실질 근로연령을 늘리는 제도가 있다. 정년퇴직자 중 희망자에 한해 신입사원에 준하는 임금을 지급하고 1년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노동계에서 요구하는 방식은 ‘완전한 정년연장’이라는 점이다. 만 60세 이후의 근무기간에도 임금 감소 없이 정직원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2013년 기존 만 58세에서 60세로 정년을 연장할 당시 도입됐던 임금피크제조차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임금피크제 폐지를 포함시켰다.


일부 기업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에 따른 고령자 임금삭감을 ‘연령차별금지의무 위반’이라며 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 승소 판례가 나오기도 한 상태다.


국내 제조업 상당수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근본적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년만 연장할 경우 임금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정년연장에 대한 기업들의 저항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아가 과거 정년연장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도입된 임금피크제까지 폐지되거나 불법 판결을 받을 경우 새로운 정년연장 논의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임금체계 개편을 전제로 만 60세에서 진일보된 정년연장을 수용하더라도 나중에 뒤집어질 수 있다는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근로자들 중에서도 최상위 호봉인 고령 근로자들의 연봉은 신입 초봉의 2~3배에 달한다”면서 “그만큼 정년 연장은 비용 부담을 크게 늘려 기업들의 청년 채용 여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년연장은 임금체계 개편 논의와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오히려 과거 정년연장때 합의됐던 임금피크제까지 부정된다면, 사용자(기업) 입장에서는 논의 자체에 거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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