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역 칼부림' 이후 석달간 살인 예고글 301건 검거…처벌은 고작 '벌금형~집행유예'
법조계 "살인예비죄로 징역 10년 처벌 가능하지만…대부분 솜방망이 처벌 내려져"
"살인 예고글, '묻지마 범죄'와 궤 같이 하는 것…구속수사 및 무관용 원칙 적용해 엄벌해야"
"단순 장난이어도 국민들에게 공포감 유발해…공중협박죄 도입 반드시 필요한 상황"
지난해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살인 예고글이 수시로 등장하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실제 범죄로 이어지지 않아 협박 또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만 적용돼 형량이 낮은 것이라고 법조계는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장난이어도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유발하고 있는 만큼 공중협박죄를 도입해 살인예비죄에 준하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4단독 이창열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협박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는 A(33)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22일 오후 1시42분께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서울역에서 24일 칼부림을 하겠다. 남녀 50명 아무나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서울역과 공덕역 등에 철도 경찰과 서울역 경비대를 투입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도 했다. 다행히 경찰이 자택에 있던 A씨를 긴급체포하면서 흉기 난동은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서울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이후 석 달여간 온라인상에 살인 예고 글을 게시한 혐의로 검거된 건수는 301건에 달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다중 위협 범죄로 검찰이 구속기소 한 인원은 32명이다. 살인 예고 글 작성은 대중의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실질적인 처벌은 벌금형이나 징역형 집행유예에 그쳐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논의됐던 '공중협박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판사 출신 문유진 변호사(판심 법무법인)는 "살인 예고글을 작성한 경우 살인예비죄나 살인음모죄는 징역 10년 이하의 처벌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실무에서는 살인예비죄가 아닌 협박이나 공무집행방해죄로 판단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인 예고글은 대중의 공포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양치기 소년'처럼 예고범죄도 장난처럼 여겨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큰 범죄로 이어질 수있다. 반드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살인 예고글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소위 '묻지마 범죄'와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중협박죄를 신설하여 살인예비에 준하는 강한 형량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확신)는 "살인 예고글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국민이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도 불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이 낭비되기 때문에 범죄 피해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며 "살인 예고글을 작성하는 경우 죄질이 극히 나쁘고 피해의 정도가 극심해 초범이라고 하더라도 구속수사원칙,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엄벌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단순히 장난으로 살인 예고글을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에게 공포감을 유발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등 피해가 발생한다"며 "이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공중협박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강조했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살인 예고글을 작성해 처벌받는 경우 대부분 협박 또는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는다. 이에 형량 자체가 다소 약하게 내려지는 경향이 있어 국민 법감정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며 "살인 예고글을 작성하는 것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인 만큼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인 예고글 작성자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만큼 공중협박죄 신설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법만능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칫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법안이 될 수 있는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