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임명보류에 野 '기습탄핵' 발의
27일 표결…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은 초유
與, 한 대행 기점으로 내각 '연쇄탄핵' 우려
의결정족수, 우원식 '결단'에 여야 시선 집중
헌법재판관 임명을 놓고 연일 정부·여당을 압박하던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합의를 호소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 보류' 방침에 헌정사상 초유의 '권한대행 탄핵' 절차에 본격 돌입했다. 나아가 권한대행 직무정지 이후 바통을 넘겨 받을 최상목 경제부총리에 대한 연쇄 탄핵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 의결정족수 논란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무위원 탄핵 가결 기준'(민주당)이냐, '대행자인 대통령 기준'이냐(국민의힘)를 두고 여야가 극단적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서다. 야권이 조기 대선을 앞당기려 국정 공백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 대행이 오늘 대국민담화를 통해 헌법상 책임인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며 "권한대행을 수행할 자격도, 헌법을 수용할 의지도 없음이 분명해졌다"고 일갈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국무총리(한덕수) 탄핵소추안'을 보고했다. 한 대행의 대국민담화가 종료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의 기습 발의다. 민주당 주도로 이날 본회의에 보고된 한 대행에 대한 탄핵안은 오는 27일 오후 국회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한 대행의 탄핵소추 사유는 총 5가지다. 국무총리로서는 △채상병·김건희 특검에 재의요구권을 건의했다는 주장 △12·3 내란 사태에 가담 또는 동조했다는 주장 △내란 이후 한덕수·한동훈 체제로 권력 행사를 시도했다는 주장 등 3가지다. 또 권한대행으로서는 △상설특검 임명을 방기했다는 주장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거부했다는 주장 등이 담겼다.
이날 한 대행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 절차가 본격화 된 만큼, 본회의 의결정족수 논란도 더욱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탄핵안 가결 요건을 '국무위원' 기준인 재적 의원 과반(151명 이상)이라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대행자인 '대통령' 기준인 재적 의원 3분의 2(300명 중 200명 이상)를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한 대행의 탄핵 의결정족수 논란을 의식한 듯 "대한민국의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직책은 없다"며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위원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요건은 국무위원 탄핵소추 의결 요건과 같다는 점을 부각하려 한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한 대행이 현재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거론하는 탄핵사유 역시 대통령 직무에 해당한다"며 "당연히 탄핵 정족수는 (대행자인) 대통령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의결정족수 논란의 종지부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찍을 것이란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본회의에 앞서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장이 151석으로 의결하는 순간이 전례가 되고 판례적 기능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권한대행 탄핵정족수와 관련해 우 의장의 입장이 나왔는지에 대해선 "합리적으로 판단하실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우 의장이 탄핵 의결정족수를 대통령 기준으로 설정할 경우에 대해선 "그런 가정은 하고 싶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면서 있었던 불법에 대해선 의결정족수가 다른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무총리 시절 내란에 대한 불법·위법 사안은 명백하기 때문에 150석을 넘겨 가결되면 선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민주당 주장대로 한 대행에 대한 탄핵안 표결이 국무위원 탄핵 의결 기준인 재적 의원 과반, 즉 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하고 한 대행도 이를 수용한다면, 한 대행의 직무는 즉시 정지된다. 이에 따라 권한대행 직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넘겨받게 된다.
이와 관련, 권성동 대표권한대행은 "만약 민주당의 주장처럼 국회 과반으로 한 대행을 탄핵한다면 다음 권한대행 역시 과반으로 탄핵이 가능하다"며 "이같은 연쇄 탄핵의 결과는 국정 초토화다. 민주당이 탄핵안을 난사하는 이유는 조기 대선으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가려보겠다는 계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헌정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시도로 정부는 이른바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를 반복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한 대행 탄핵 의결정족수가 국무위원 기준으로 적용되면, 다음 권한대행 역시 동일한 기준을 적용 받게 된다. 거대 야당발(發) '연쇄 탄핵'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관측되는 대목이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라디오에서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탄핵소추 요건을 갖춘 사람은 대통령 한 사람뿐이지 권한대행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상목 부총리가 한 대행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할 경우를 가정한 듯 "계속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편 우 의장은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한 대행에 대한 탄핵 의결정족수 기준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도 "1차적 판단은 의장이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