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직전까지 전국민 25만원 강조하다
국민의힘 수용 않자 '조건부' 요구 선회
정작 지난달엔 관련 법안 재발의하기도
與 "곧이곧대로 말 믿는 사람 없을 것"
설 연휴 밥상에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올리려던 더불어민주당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자, 민주당이 추경의 걸림돌로 여겨지던 1인당 25만원의 민생안정지원금 지원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말 사상 초유 '삭감예산안'을 단독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 추경 편성을 연일 주장하고 있다는 점, 여당이 추경과 관련 민주당의 대국민사과부터 선행이 돼야 한다고 내걸고 있는 점 등은 민주당의 의도와 달리 조속한 추경 편성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이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반대해 추경 편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추경 요구 사항에 민생지원금을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추경을 통해 전 국민에게 25만원의 민생회복금을 지급, 이를 지역화폐 형태로 배포한다는 방침이었다.
다만 언뜻 민생회복지원금의 포기 가능성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이 대표는 민생회복지원금·지역화폐 지급에 대한 당위성은 계속해 피력하는 중이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경제를 살릴 추경, 그리고 민생의 온기를 불어넣을 민생지원금이 꼭 필요한 상태다. 민생지원금의 차등지원, 선별지원 다 괜찮다"며 '민생지원금'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효율적인 민생지원 정책이 나오면 (민생회복지원금 예산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으니 추경을 편성해달라"는 입장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지방정부·기초지자체들의 민생지원금, 지역화폐 발행은 우리 국민 여러분께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실 필요가 있다"며 "'퍼주기 했다' 이런 식의 공격이 많은데, 호남의 기초지방정부들이 이 재원을 마련하느라고 세금을 더 걷거나, 빚을 내거나 그러지 않았다. 똑같은 예산을 가지고 예산을 절감하고 또 불필요한 예산들을 줄여서 그 예산 범위 내에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이 대표의 목소리는 최근 그가 '현실적 실용주의' '민생회복'을 강조하는 것과 맞물려 결국 차기 대권주자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함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민주당이 완전히 민생회복지원금과 지역화폐 활성화를 포기한 것인지를 둘러싼 의구심도 증폭되는 기류다. 국민의힘에서는 '꼼수가 아니길 바란다'는 반응부터 나오는 등 이재명 대표의 진짜 의중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추경을 입에 올리려면 지난해말 예산안 강행 처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가 우선"이라며 "국민의힘은 추경 요인이 있을 때 여야정이 협의하자는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도 기자들과 만나 "예산안 강행 처리에 대한 어떤 사과도 없이 추경을 하자고 한다"며 "정국 전환용 꼼수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민을 속이기 위한 립서비스"라는 입장과 함께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여야가 논의할 수 있지만, 정치 공세식으로 추경하자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추경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집행 시기를 1분기 예산 집행 이후로 꼽고 있던 상황이고 민주당이 이미 지난해 일방적인 예산 삭감을 단행한 상황에서 야당의 요청에 응해 추경에 섣불리 동의할 경우의 후폭풍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 대표가 '전국민 25만원 지역상품권 지원’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달리 민주당은 지난 22일 앞서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최종 폐기된 '지역사랑상품권법 일부개정법률안'(지역화폐법)을 재발의한 바 있다. 재발의된 법안은 2월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이 목표다.
민주당 당론으로 확정된 개정안에는 지역화폐 국비지원을 의무화하는 한편, 5년 단위로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토록 했을 뿐만 아니라 1년 단위로 실태조사를 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여권에서는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10일엔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단독 순감 수정을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당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전이었고, 국민의힘은 본회의 직전까지 증액안을 제시하며 민주당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끝내 결렬된 바 있다. 민주당에서 '추경' 언급은 사실상 '이재명표 예산'으로 수식되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지역구 예산 등의 증액·복구를 시사한다는 관측이 당시에도 지배적이었다.
서지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민생지원금 포기' 입장과 함께 '추경'을 계속해 띄우는 이 대표를 향해 "이 대표의 발언을 두고 '정권 찬탈'을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존경한다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인지가 궁금할 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맹폭을 가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회동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추경 언급이 나온데 대해서도 "두 사람은 추경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헌정사 초유의 '감액 예산안' 강행처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어야 한다"며 "이러한 최소한의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추경'을 단지 이 대표의 새로운 방탄복이나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지지율 유지를 위한 '동아줄'로만 여긴다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재명 "AI 개발· 투자에 진심 다하겠다"
돌연 'DJ ' '딥시크' 언급하며 또 추경 꺼내
국민의힘 "반도체특별법부터 협조하라"
2월도 여야 예산 주도권 기싸움 이어갈듯
최근 정치권 기류에 비춰 여야는 설 연휴 이후에도 추경을 둘러싼 양보없는 기싸움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여야는 국정협의체 실무협의에서도 의제에 대한 거리를 좁히지 못한 상황이다. 설 연휴 이후 양당 정책위의장 간 실무협상이 재개될 경우, 민주당이 추경을 최우선 의제로 제기할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 자리에서 민주당의 의도를 파악하고 거듭된 '신속 추경 편성 요구'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국민의힘이 신중론을 견지함에 따라, 돌연 "과학기술 투자와 미래 먹거리를 무엇보다 중시한 민주당의 전통을 이어 인공지능(AI) 개발과 투자에 진심을 다하겠다"며 최근 글로벌 ICT업계에 충격을 준 중국의 저비용 인공지능(AI) 딥시크(DeepSeek)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그러면서 "1년 전 공개된 김대중 대통령님의 옥중 영상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1981년에 사형수 김대중은 마치 지금의 챗GPT를 연상케 하는 미래를 예견한다"며 추경 필요성을 또 역설했다.
이 대표는 "김대중 선생께서는 그로부터 16년 후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돼,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대한민국을 IT 강국·디지털 강국으로 도약시키는 초석을 놓았다"며 "대한민국 또한 국가적 명운을 걸고 AI 기술개발에 투자를 해야 하는 때"라고 했다.
이어 "가성비를 내세우는 딥시크의 등장은 '쩐의 전쟁'으로 흐르고 있던 AI 개발 경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고,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우리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도 동시에 도전과 기회가 될 것"이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시의적절하게 국가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양보해야 하는 게 있다면 양보하겠다"고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부터 협조하라"고 맞받았다.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AI 기술을 외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반도체 산업 지원은 외면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며 "AI에 진심이라면 먼저 반도체지원특별법부터 협조하라"고 비판했다.
한편 여야 실무협의에는 민주당의 요구인 추경 외에도 반도체 특별법 등 민생 법안, 연금개혁 등이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