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일몰 예정…피해자들 법안 연장 촉구
개정안 발의됐지만 탄핵 정국 속 논의 ‘불투명’
“물리적 시간 더 필요…피해 지원은 계속돼야”
# 서울 금천구의 한 다가구 주택에 거주 중인 A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다. 이달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지난해 10월께 임대인에게 이사하겠다고 연락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2년 전 임대차계약을 중개해 준 공인중개사도 한통 속인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러는 사이 건물은 경매에 넘어갔다. 같은 빌라에 거주 중인 세입자들과 임대인을 형사 고소했지만 경찰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국토부의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정부가 특별법으로 마련한 다양한 구제 방안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에 피해자 신청도 했지만 몇 달 만에 돌아온 소식은 ‘불인정’ 통보였다. A씨는 관련 서류를 보완해 다시 피해자 신청에 나설 예정이지만 5월 말 특별법 만료 전까지 피해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초조하기만 하다.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A씨와 같은 피해 사례가 이어지면서 사안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시행 중이지만 일몰을 앞두고 있어 피해자들의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는 모습이다.
7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2023년 6월부터 시행 중인 전세사기특별법의 일몰 기한이 5월 31일로 3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연장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대책위)는 최근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기한 연장 및 추가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고 1만명 서명운동도 함께 진행 중이다.
대책위는 ▲특별법 유효기간을 2027년 말까지 연장 ▲세입자 계약갱신권 확대 및 임대료 인상률 제한 확대 적용 ▲전세가율 규제, 최우선변제 제도 개선 등 전세사기 예방 대책 강화 ▲임대사업자 제도 개선 및 임대차 행정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법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더 필요한 만큼 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목소리로 국회에서도 연장을 위한 움직임이 있기는 하다.
염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6일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조지연 의원(국민의힘)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긴급복지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지만 탄핵 정국 속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대책위 관계자는 “특별법이 연장되지 않으면 피해자를 인정하고 지원 대책을 제공했던 것이 끝난다”며 “아직 공식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아 마냥 기다리는 피해자, 여러 문제로 단기간 해결이 어려운 피해자, 피해를 인지하지도 못한 피해자 등 다양한 세입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될 위험에 처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12·3 계엄 이후 정치적 상황이 불안해지면서 특별법 개정 및 예방 대책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특별법이 시행 중인 지금도 지원 대책 이용을 거절 당하는 사례가 허다한데 특별법이 종료되면 관련 도움을 받을 창구마저 없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한 차례 개정된 특별법은 그 해 11월부터 본격 추진되면서 현재는 LH 경매차익을 활용하는 방안이 시행 중이다.
LH가 경매로 사들인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10년간 무상거주하거나 LH 감정가와 낙찰가액의 차이만큼인 경매차액을 보증금으로 일부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돼야 특별법에 따른 법률 및 금융·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단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는 2만5578명이다.
A씨처럼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까지 더하면 실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대책위는 여전히 월평균 1200여명 정도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최근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시장 침체로 경매로 넘어가는 물건이 늘어나면서 실제 LH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경매로 낙찰받기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특별법 연장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LH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올 2월 말까지 LH가 경매로 사들인 전세사기 피해주택은 113가구에 그친다. 매입 신청 및 심의 단계에 있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은 약 1만5000건에 이른다.
LH 관계자는 “특별법 개정안에 따라 주택 매입이나 이주지원 등은 어느 정도 잘 진행되고 있다”며 “다만 전세사기 피해주택만 따로 경매를 진행하는 게 아니다 보니 어느 시점에 피해 주택 낙찰이 이뤄질지 계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법 기준에 따라 두 번, 세 번 유찰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현재 매입 신청을 받거나 심의 중인 물건들에 비해서 매입 건수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특별법 일몰을 앞두고 시장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펴서 보다 명확한 기준에 의한 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년 간 권리 회복의 기회나 시간을 부여했던 것이기 때문에 일몰 연장을 하더라도 전세사기 피해가 지금처럼 지속되지 않도록 좀 더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 연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한 사례나 충분히 전세사기가 예견되지만 일몰 기한 때문에 손 써보지도 못하고 제외되는 경우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며 “법안 일몰 연장 논의와 별개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연속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