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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 하나 된 코리아” 제1회 마포 서윤복마라톤 대회 개최 취지는


입력 2025.03.26 10:46 수정 2025.03.26 10:47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서윤복, 1947년 보스턴 마라톤서 KOREA로 첫 우승

4월 19일 상암 월드컵경기장 일원에서 역사적 첫 대회

광복 직후였던 지난 1947년 4월, 정식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라 이념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던 때, 24세 나이의 한 청년이 미국 보스턴에서 마라톤 대회 우승 소식을 전했다. 그가 바로 서윤복(1923년~2017년)이다.


감격적인 서윤복의 우승은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 11년 전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손기정, 남승룡의 든든한 지도가 있었고 무엇보다 ‘코리아’라는 자긍심이 그의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오는 4월 19일 상암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서는 역사적인 ‘제1회 마포 서윤복 마라톤 대회’가 개최된다. 보스턴 영웅이 탄생한지 정확히 78주년이 되는 해다.


‘제1회 마포 서윤복 마라톤 대회’는 한반도를 하나로 뭉치게 했던 서윤복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윤복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주관을 하고 서울시 마포구가 주최한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커피숍에서 서윤복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김영준 부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결승점 골인 순간. ⓒ 서윤복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Q : 다음 달 서윤복 마라톤 대회가 처음으로 열린다. 대회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김영준 부위원장(이하 김 부위원장) :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국가적인 차원이다. 우승 당시 한반도는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고, 신탁과 반탁 통치로 엄청나게 시끄러울 때였다. 그런데 서윤복 선수가 우승을 하고 서울에서 개선 행사를 하자 이 날 만큼은 양 측이 다툼을 잠시 멈추고 다함께 환호를 했다.


서윤복 선수는 ‘코리아’를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승을 달성했을 때에는 정부 수립 전이라 공식적인 국가 명칭이 없었고, 그 이전에는 일제 치하였기에 코리아를 쓸 수 없었다. 우승을 하자 외국에서 코리아를 연호했고, 한반도에서도 모두가 코리아라 외치며 하나가 됐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념이나 세대 갈등이 이슈가 되는데 좀 더 화합된 모습을 강조하고자 서윤복 마라톤 대회가 추진됐다. 마치 2002 한일 월드컵 때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마라톤 정신의 계승이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서윤복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코치로 나섰던 손기정과 남승룡, 그리고 서윤복까지 세 사람이 만든 업적이었다. 일명 보스턴 마라톤 3인방이다. 이들 중 남승룡이 2001년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를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는 ‘순천남승룡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이듬해 손기정이 돌아가시고 ‘손기정 평화마라톤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1회 마포 서윤복 마라톤 대회’를 열 수 있게 됐다. 보스턴 3인방의 정신을 계승할 3개 마라톤 대회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서윤복(왼쪽부터)-손기정-남승룡. ⓒ 서윤복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Q : 마지막 하나가 궁금하다.


김 부위원장 : 첫 올림픽 참가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1946년 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참가 조건으로 ‘3종목 이상 국제경기연맹(ISF) 가입’과 ‘통일된 독립 국가’를 내걸었다. 당시 조선체육회는 육상과 역도, 레슬링, 축구, 농구, 사이클, 복싱 등 7개 종목에 대해 가입을 신청했고 5종목 승인이 이뤄졌으나 육상과 축구는 이듬해 총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으로 물꼬가 트였다. 우승 직후 미국 뉴욕에서 아마추어육상연맹 초청으로 오찬 행사를 열렸는데 이 자리에 제레미아 마호니 IOC 위원을 비롯해 미군 관계자, 그 외 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서윤복의 우승을 높게 평가했고 이전까지 불투명했던 육상과 축구의 ISF 가입이 이뤄졌다. 결국 이듬해인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역사적인 첫 참가가 이뤄졌다. 서윤복의 우승이 나비효과를 일으킨 셈이 됐다.


서울 개선 행사 당시의 서윤복. ⓒ 서윤복기념사업 추진위원회

Q : 서윤복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선 부분도 있으나 서울시 마포구의 도움도 컸다는데.


김 부위원장 : 지난해 서윤복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이 되었고 10월에는 서울시 마포구의 도움을 받아 이대역과 대흥역 사이 1.2km 구간을 ‘서윤복 길’로 지정했다. 서윤복의 모교인 숭문중·고등학교를 지나는 길이다.


사실 서윤복 길뿐만 아니라 서윤복 마라톤 대회 개최는 마포구의 도움없이 이뤄질 수 없었다. 박강수 마포구청장께서 흔쾌히 이번 일에 나서주셨고, 구의회를 통해 대회 운영 비용을 지원해주셨다.


서윤복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 김영준 부위원장. ⓒ 데일리안 김윤일 기자

Q : 서윤복 마라톤 대회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리나?


김 부위원장 : 당연히 2회, 3회 대회를 열고 더 나아가 풀코스 대회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이후에는 국제마라톤대회로 치르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 1회 대회를 잘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내년 대회를 위해 챙겨둘 것도 있다. 바로 대회의 연속성을 위한 디자인 제작이다.


내년에도 활용할 수 있는 티셔츠와 메달을 제작할 예정인데 글로벌 수준의 디자인으로 만들고자 한다. 무엇보다 티셔츠와 메달은 일반 참가자들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때 가장 받고 싶은 상품이라고 하더라.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역주를 펼치는 서윤복. ⓒ 서윤복기념사업 추진위원회

Q : 서윤복의 이야기도 들려 달라. 선수로서의 서윤복은 다소 이른 시기 은퇴를 했으나 이후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한국 체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김 부위원장 : 서윤복은 보스턴 마라톤을 우승한 이듬해인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했으나 성적이 썩 좋지 못했고,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육상계, 더 나아가 체육계를 떠나지 않았다. 은퇴 후 곧바로 모교인 숭문 중고등학교로 돌아와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고, 195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한국 선수단 감독으로 다시 보스턴을 찾았다. 이후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에서도 감독으로 참가해 이창훈의 금메달 획득을 도우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1970년부터는 행정가의 길에 들어섰다. 서윤복은 1961년 서울운동장장에 임명돼 1977년 퇴임할 때까지 17년간 최장수 체육행정가로 수완을 발휘하며 한국 체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후진 양성에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1979년 손기정, 서윤복 등 육상 원로들을 중심으로 마라톤 후원회가 발족했고 이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영조,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이봉주 우승의 결실로 이어졌다. 1990년대부터는 명강사로도 활동했다. 당시 서윤복은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기조와 함께 뚜렷한 목표와 집념을 강조하며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전달했다.


월계관을 쓴 서윤복 가슴에 태극기와 ‘KOREA’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 서윤복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한편,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윤석중은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후 자유신문(1947년 4월 27일)에 ‘서윤복 선수의 노래’를 헌사했다.


이에 대해 김영준 부위원장은 “가사는 남아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멜로디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차녀인 서정실 씨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서 씨가 곡의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었고 귀중한 사료 하나를 더 확보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하 ‘서윤복 선수의 노래’ 가사


1.


2시간 25분 39초는

보스턴마라톤의 세계신기록

날려라 태극기를 승리의 기를

세계의 앞장을 선 서윤복 선수



2.


꿋꿋한 정신으로 참을성으로

끝까지 싸워 이겨 차지한 영광

날려라 태극기를 승리의 기를

거룩한 힘의 사도 서윤복 선수



3.


조국의 자유 위해 평화를 위해

으리는 달리리라 정의의 길을

날려라 태극기를 승리의 기를

조선의 젊은 아들 서윤복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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