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동차 관세 폭탄, 지난 4일 시작… 전세계 25%
관세 피해 충당 움직임… 가격 인상·구조조정 등
현대차·기아·토요타·혼다, 손해 보더라도 '시장 지키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일(현지시간 3일)부터 모든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고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가운데 미국을 주요 시장으로 둔 제조사들 사이 양극화 움직임이 감지된다. 관세만큼의 피해를 충당하기 위해 발빠르게 인력감축과 차량가격 인상에 나서는 브랜드들이 늘고있는 반면, 손해가 불가피함에도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관망하는 제조사들 역시 입장을 공고히 하면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 방침이 시작된 이후 후폭풍이 가시화되고 있다. 인력 감축 또는 미국 내 차량 가격 인상을 통해 관세 만큼의 부담을 충당하거나, 일부 차종에 대한 생산을 중단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미국 '빅3' 자동차 업체인 스텔란티스는 인력 감축에 먼저 칼을 빼들었다. 미국 내 5개 공장에서 근무하는 약 1000명의 근로자를 일시적으로 해고하기로 하면서다. 또 캐나다에 있는 생산공장은 2주간, 멕시코에 있는 생산공장은 이달 말까지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제조업 경쟁력 확대를 목표로 시행한 정책이지만, 미국 '빅3' 제조업체 역시 타격을 피해갈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전통 미국 제조사 포드 역시 멕시코, 캐나다 공장에서 연간 수십만대의 차량과 부품을 미국으로 수입해온 만큼 관세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USMCA)에 따라 상호관세 대상에선 제외했지만 자동차 관세는 타국과 똑같이 25%를 부과한다.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도 멕시코에서 생산한 SUV 2종의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 미국 주요 모델인 QX50와 QX55 등으로, 현재 미국에서 신규 주문이 무기한으로 중단된 상황이다.
가격 인상 역시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페라리는 푸로산게, 12칠린드리, F80의 미국 소비자 가격을 최대 10% 인상한다. 이네오스 오토모티브 역시 미국행 차량의 가격을 최대 11%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폭스바겐도 멕시코에서 생산된 차량의 미국행 철도 운송을 중단한 데 이어 '수입 수수료'를 추가할 계획이다. 수입 수수료는 미국 외 지역에서 조립된 차량이 미국에 들어갈 때 붙는 관세만큼의 수수료로, 신차가격에 포함된다. 아직까지 수입수수료 정책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관세를 소비자가 무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폭스바겐은 멕시코에서 제타, 타오스, 티구안 등을 생산한다.
반면, 고관세 폭탄에도 불구하고 가격 동결을 결정한 업체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차, 기아, 혼다, 토요타 등 미국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대중 브랜드'들이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우선 약 2달 가량은 가격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사장은 지난 3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5 서울모빌리티쇼'에서 미국 내 가격 인상 가능성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관세 관련한 발표가 있었다. 사실 이전에도 설명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며 "현재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인상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모빌리티쇼를 찾은 송호성 기아 사장 역시 가격 인상과 관련해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송 사장은 "(가격 인상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며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빠른 것 같다"고 했다.
미국 내 판매 1위 업체인 토요타도 "당분간 운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했고, 혼다 역시 당장 가격 조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 내 주요 대중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당장 타격을 입더라도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대중 브랜드 특성상 가격 인상이 즉각적으로 판매량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고객 충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지 전문가들은 현대차·기아가 현재 25%의 관세를 감내할 경우 연간 10조 이상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으며, 토요타는 120억달러(약 17조6000억원)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기 모델의 생산망을 조정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주요 모델의 생산지를 앨라배마에 위치한 공장으로 이전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제너럴 모터스(GM)는 미국 내 생산공장에서 프리미엄 인기 픽업트럭인 쉐보레 실버라도와 GMC 시에라 픽업트럭의 생산량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를 부과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미국 자동차 시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 '빅3'라고 해서 관세 정책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모두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고, 트럼프 대통령의 목적은 미국에 더 많은 공장과 일자리를 유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격 인상이 가장 빠르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식이지만, 대중 브랜드의 경우 당장의 피해를 줄였다가 향후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고 고객 충성도가 낮아졌을 때 마주하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다만 관세 정책이 장기화될 수록 신차 가격 상승 등의 카드를 꺼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