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재 '아시아 3관왕' 그 비현실적 현실
일천한 역사와 척박한 인프라 떠올릴 때 비현실적 성과
‘현상’으로 끝나지 않게 ‘손연재 키즈’ 육성 시스템 시급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9·연세대)가 2013 리듬체조 아시아선수권 3관왕에 등극, 명실상부한 아시아 리듬체조 여왕의 권좌에 올랐다.
손연재는 8일(한국시각)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서 열린 대회에서 개인종합 금메달과 종목별 금메달(후프, 곤봉)을 묶어 총 3개의 금메달과 팀 경기와 리본 은메달을 더해 총 금3-은2개를 수확했다. 국제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지난 2011시즌 이후 2년 만에 거둔 성과.
개인종합 결선에서 한국 리듬체조 사상 최초로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낸 손연재는 오는 8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
볼 결선에서 치명적인 실수로 메달권 밖으로 밀려난 점이나 리본 결선에서 빼어난 연기를 선보이고도 '중국 에이스' 덩 센유에의 기대 이상의 선전에 가려 금메달을 놓친 점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대회 전체를 놓고 볼 때, 손연재표 연기의 클래스는 분명 경쟁자들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나타냈고, 출전한 그 어느 선수보다도 많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손연재가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공인 받은 이번 성과는 그 동안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구 소비에트연방(소련) 소속 국가 선수들이 아시아 리듬체조의 대표주자로 군림했던 역사를 종식시키고, 아시아 리듬체조를 한국을 중심으로 한 극동아시아 시대로 이끄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손연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 한 마디로 ‘쉼 없는 성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원조 리듬체조 여신’ 신수지와 팀 경기에 출전해 아쉽게 메달을 놓쳤지만, 개인종합에서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메달(동)을 획득, 신수지 후계자로서 확실한 세대교체를 이뤘다.
2011 시니어 무대 데뷔 이후 손연재는 같은 해 몽펠리에 세계선수권에서 자력으로 2012 런던올림픽 진출권을 거머쥔 데 이어 대망의 런던올림픽에서 개인종합 5위에 오르며 세계리듬체조계에서 촉망받는 선수로 급부상했다. 시니어 데뷔 3년차가 되어 맞이한 2013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시즌 유일의 ‘카테고리 A’ 대회였던 불가리아 소피아 월드컵(5월)에서 국제대회 개인종합 최고인 4위에 오르고, 이탈리아 페사로 월드컵(4월)과 벨라루스 민스크 월드컵(5월)에서 총 3개의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2012 런던올림픽, 그리고 이번 아시아선수권까지 그동안 손연재가 리듬체조 선수로서 지나온 타임라인을 되짚어 보면 아시아 리듬체조 여왕이라는 타이틀은 충분히 예상하고 기대했던 성과다. 그럼에도 그 결과가 막상 현실이 된 것을 보고 있으면 한국 리듬체조의 일천한 역사와 척박한 인프라가 오버랩, 한편으로는 오늘날 손연재의 존재와 손연재가 거둔 수 많은 의미 있는 성과들이 참으로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피겨 스케이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 혜성처럼 등장해 세계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에 길이 빛날 전무후무한 기록행진을 이어가며 동계올림픽 2연패까지 바라보고 있는 김연아의 존재와 그 성과가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와 인프라에 비춰볼 때 다분히 비현실적인 현실인 것처럼 말이다.
아시아선수권 3관왕이라는 오늘의 성과가 한국 리듬체조에서 그야말로 일시적이고 비현실적인 현실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우선, 손연재 뒤를 받칠 만한 선수들이 속속 등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한솔, 천송이 등과 같은 경쟁력 있는 유망주들이 대중들의 관심 속에 성장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손에 꼽을 정도의 얇은 선수층만으로는 부족하다. 손연재를 롤모델로 리듬체조 스타를 꿈꾸는 ‘손연재 키즈’ 세대를 탄생시키고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체계적인 선수발굴과 육성책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열악한 환경과 기형적 구조가 지속되는 한 오늘날 손연재가 거둔 성과는 그야말로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손연재 성공 사례를 통해 리듬체조가 한국 스포츠 위상을 높이는 데 효자종목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이상, 리듬체조 발전을 위한 기업의 지원 외에도 체육계와 정부 차원의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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