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대형사 전유물 되나…압박 정책 역효과 우려
"보험료 내려라" 정부 움직임 본격화…보험사 부담 증폭
중소형 보험사 보이콧 가시화…대형사들은 '동결' 버티기
33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끌어 모으며 이른바 국민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이 정부의 보험료 인하 압박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가격을 내릴 여력이 없는 중소형 보험사들 사이에서는 실손보험 보이콧 움직임마저 가시화하는 가운데 대형사들은 보험료 동결을 선언하며 버티기 모드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정부 정책으로 인해 실손보험이 몇몇 대형 보험사들의 전유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새나온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DGB생명은 다음 달부터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본적으로 팔면 팔수록 손해인 실손보험에서의 적자 누적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이를 감내하기 힘든 중소형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에서 손을 뗄 것이란 전망이 끊이지 않던 중 나타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실제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대부분 100%를 넘겨 왔다. 손해율이 100% 이상이라는 것은 보험사가 실손보험 가입자로부터 받는 보험료보다 내준 보험금이 더 많다는 의미다. 보험업계의 실손보험 평균 손해율은 ▲2014년 112.5% ▲2015년 115.0% ▲2016년 123.3%를 나타냈다.
이에 현재 외국계이거나 과거 해외 자본이 주인이었던 보험사들은 일치감치 실손보험에서 손을 뗀 상태다. AIG손해보험과 악사손해보험, 에이스손해보험, PCA생명, 라이나생명, ING생명, AIA생명, 푸르덴셜생명, 메트라이프 등은 최근 몇 년 사이 차례로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이런 와중 정부가 보험료를 내리라고 주문하면서 실손보험 시장에 남아 있는 중소형 보험사들의 이탈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실손보험 판매 중단에 나서는 보험사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올해부터 기존 의료 비급여 항목들을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 항목으로 바꾸는 문재인 케어의 가동에 들어가면서 실손보험료 인하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가 줄어들면서 보험사들이 반사이익을 챙긴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올해 실손보험료 인상안은 잠정 보류된 상황이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실손보험 참조 순보험료율을 10% 안팎 인상해야 한다는 보험개발원의 방안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를 돌려보면서 올해 실손보험료 인상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2016년과 2017년 보험사들은 실손보험료를 각각 20.8%와 10.2%씩 인상한 바 있다.
실손보험 끼워 팔기가 전면 금지된다는 점도 보험사에게는 부담이다. 지금까지 보험사들은 주로 실손보험을 다른 보험에 특약 형태로 부가해 판매해왔다. 실손보험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는 4월부터 이 같은 행위가 불가능해지면서 실손보험은 단독형 상품으로만 팔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실손보험료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중소형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형 보험사들은 일단 보험료 동결로 가닥을 잡으며 사태를 관망하는 분위기다. 삼성화재와 한화생명, 교보생명,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NH농협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 9개 보험사는 올해 실손보험료를 동결하기로 했다. ABL생명은 아예 16.4% 인하를 결정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결국 실손보험이 거대 자본을 갖춘 대형 보험사들만 참여할 수 있는 과점 시장으로 변해 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은 보험료가 인하되면서 소비자들이 혜택을 보는 것처럼 비춰지겠지만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 실손보험은 손해가 나는 상품이지만 국민보험이라 불릴 만큼 워낙 수요가 많아 고객에게 접근하기 가장 좋다는 장점이 있다"며 "보험사는 가능하다면 실손보험을 유지하려 할 것이고, 지금과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이는 결국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대형 보험사들의 몫이 돼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에 대한 현재의 정책 기조가 이어진다면 해당 시장 참여자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사업자 간 경쟁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는 정부의 가격 통제력이 느슨해지는 순간 실손보험료가 과거보다 더 빠르게 오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