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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전 이사회 배임으로 내모는 정부


입력 2019.07.04 07:00 수정 2019.07.04 08:37        조재학 기자

한전 배임 논란에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 마련

정부, 한전 이사회에 누진제 개편 책임 떠넘겨

한전 배임 논란에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 마련
정부, 한전 이사회에 누진제 개편 책임 떠넘겨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가운데)을 비롯한 이사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다룰 한국전력 이사회’ 개의를 기다리고 있다.ⓒ데일리안 조재학 기자

탈원전 공약은 지켜야겠고, 내년 총선 표심을 감안한다면 전기요금은 내려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내몰린 정부가 결국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후폭풍이 분명한 사안인데도, 정권 내 터지지 않게 덮어두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아 씁쓸하다.

한전 이사회는 지난달 21일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의결을 보류한 바 있다. 한전 경영실적이 악화된 가운데 매년 3000억원 가까운 손실이 불가피한 사안을 결정할 경우 자칫 배임행위가 될 소지가 높았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숙고를 거듭한 한전 이사회는 결국 누진제 개편안과 함께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들고 나왔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체계 개편안을 가결해 배임 부담을 덜어냈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전기요금 개편안에는 누진제 1단계 사용자에게 최대 4000원을 할인해주는 ‘필수사용량보장공제’를 폐지 또는 완화하는 방안과 원가 이하의 전력 요금체계를 현실화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이는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입장은 달랐다. 산업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사외이사가 별도로 제안해 의결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은 정부와 협의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정부는 그간 현 정권 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없다고 공언해온 터라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한전은 전기판매사업자이지만, 전기요금을 개편하려면 정부 인가가 필요하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하지 않는 한 이번 이사회가 의결한 ‘전기요금 체제 개편안’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협의가 없었다는 정부의 입장은 정부 정책을 따른 한전 이사회를 배임으로 몰아세우는 꼴이다.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장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만 보더라도 발전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지난해 6월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신규 원전 4기 백지화를 결정했다. 당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손실에 대해서는 정부의 보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사회에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진원전 등 신규 원전 건설사업 종결을 비롯해 월성 1호기 조기폐쇄에 따른 정부의 비용보전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동안 정부는 지난 5월 탈원전 정책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이 예정돼 있던 강원도 삼척시 대진원전 예정구역 지정을 철회했다.

조재학 산업부 기자
정부 정책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진 공기업들이 골병 들고 있다. 정부는 정권 내 터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공기업 부실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부실한 공기업을 살릴려면 결국 공공요금을 올리거나 세금으로 메워줄 수밖에 없다. 청구서를 받아든 국민들은 공기업 부실의 책임이 누구인지 따지게 될 것이다.

조재학 기자 (2j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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