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노사, '코로나 사태'로 점철된 상반기 경영지표 둘러싸고 갈등 격화
정책금융기관도 기재부 성과지표에 발목…"수익성 쫓다 '신속·적극' 언감생심"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저금리 정책자금 출시와 신속한 자금지원을 천명했지만 현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유례를 찾기 힘든 비상시국에 자금을 공급받으려는 이들로 넘쳐나지만 기존 실적과 경영평가 이슈가 현장인력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소극적 공급 및 끼워팔기라는 악순환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최근 노동조합의 ‘윤종원 현 행장 노동청 고발’ 조치를 필두로 윤 행장 취임 한 달여 만에 또다시 노사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표면적으로는 사측이 직원들의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배했다는 명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상반기 경영실적평가 특례’ 논의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특화된 정책금융기관으로 이번 코로나 사태에 따른 자금지원에 있어서 적지 않은 비중을 담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은 노사 모두 ‘코로나19’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자금대출 공급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면서도 기존 업무를 얼마나 조율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조 측은 창구고객 90%가 대출에 쏠린 데다 직원들의 업무강도도 3배로 늘어난 만큼 올 상반기만이라도 직원평가를 50% 가량 줄이는 대신 코로나 자금공급에 집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업무량이 늘면서 편법으로 야근 또는 추가근무를 하는 등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해당 지표의 약 15% 가량 목표치를 낮추는 수준에서 현 국난 극복에 노사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기은 노조 관계자는 “사측에서 조정했다는 목표치의 경우 가입량을 일부 조정한 것에 불구하며 이익목표는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라며 “결국 이익목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결국 코로나 관련 자금 대출을 받으러 온 고객들에게 퇴직연금 등 이른바 ‘끼워팔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은 뿐 아니라 최근 코로나 자금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여타 정책금융기관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를 둘러싸고 공방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정책기관들의 경우 기획재정부나 소관부처에서 실시하는 경영실적평가를 따르고 있는데 이를 통해 기관 뿐 아니라 직원들 개개인에 대한 차등평가가 이뤄지는 구조다. 이는 직원 승진이나 성과급 차등지급 등 근거가 된다.
문제는 이같은 평가기준에 수익성 등 대출의 질이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평가지표를 무시할 수 없는 임직원들의 경우 코로나 사태에서조차 신속한 자금공급보다 보다 양질의 기업에 대해서만 대출을 진행하는 데에 역점을 둘 소지가 높다. 실제로 대출 관련 보증업무를 맡고 있는 한 정책금융기관 창구에서는 자금 공급이 절실한 취약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요청에 갖가지 이유를 들어 돌려보내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일선 공공기관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조차 경영평가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등한시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관들의 경영평가 및 내부 성과평가에 대해 현 상황에 걸맞게 완화시키는 특단의 대책 없이는 국민들이 체감 가능한 정책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이번 코로나 사태와 같은 특수한 위기상황에서 수많은 국민과 기업들이 신속하고, 조건이 다소 안좋더라도 충분한 지원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특정 평가지표에 얽매여 현장의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데 지장을 받고 있다”며 “이는 집에 불이 났는데 깨끗한 수돗물만 가려다 물을 부으라고 정부가 강요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