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추미애 "한명숙 유죄 사건 재조사 필요"
재판에서 사법적 판단 끝난 '비망록' 다시 내세워
일각서 "선거 이겼다고 유죄를 무죄로 만드나"
최민희 "180석의 힘"...진중권 "날조에 도가 텄다"
여권이 불법 정치자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의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미 재판 과정에서 사법적 판단을 받은 비망록을 근거로, 한 전 총리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 3권을 장악한 여권이 대법원 판결까지 뒤집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공개된 고 한만호 씨의 옥중 비망록을 언급하며 "모든 정황이 한 전 총리가 검찰의 강압수사, 사법농단 피해자임을 가리킨다"며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는 뇌물로 한 사람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총리는 2년간 옥고를 치르고 지금도 고통받는데 (재조사 없이) 넘어가면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며 "법무부와 검찰은 부처와 기관의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민은 검찰의 과거 수사 관행에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고 이해한다"며 "한 전 총리 유죄 사건은 구체적이고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최근 언론에 공개된 고 한만호 씨의 비망록에 있다. 비망록에는 "검찰이 한 총리 유죄만 나오면 사법 재기와 조기 출소를 돕겠다고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검찰의 회유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한신건영 대표였던 한 씨로부터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다. 한 씨는 2018년 사망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여권이 내세운 비망록이 이미 1~3심 재판 과정에서 정식 증거로 제출됐고, 당시 재판부와 변호인의 검토가 끝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 결과 1심에서만 무죄 판결이 나왔고, 2심과 대법원에서는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특히 대법관 13명 전원은 한 씨가 줬다는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중 3억원 수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한 전 총리는 "비서가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3억원 중 수표로 발행된 1억원이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금으로 쓰인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 판결까지 확정된 사건의 재조사를 촉구할 수 있게 된 건 여권이 입법부·행정부·사법부 3권을 모두 장악한 거대 권력이 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라디오와 1인 미디어들이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공작수사 소식을 전한다"며 "180석의 힘이 아닐까"라고 주장했다.
반면 서정욱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재심이 되려면 무죄를 입증할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기존의 증거밖에는 없는 상황"이라며 "선거에서 이겼다고 유죄를 무죄로 만들려 하느냐. 말도 안되는 법치 유린이 벌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 장관과 함께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했던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증거를 갖춰 재심을 신청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다"면서 "의혹 제기만으로 과거의 재판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비춰질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이의가 있다면 당정이 나설 일이 아니라 한 전 총리 자신이 새로운 증거와 함께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면 된다"며 "이 사람들, 어용 언론을 통해 세계를 날조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