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비스 기업가치 오르면 정 회장 모비스 지분 인수 통한 '정공법' 가능
액화수소 해상운송, 배터리 리사이클링 등 미래 유망사업 추진 '주목'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정 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승계를 위한 최우선 과제가 지배구조 개편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국내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개편 작업을 서두르게 만드는 요인이다. 2년 넘게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멈췄던 현대차가 다양한 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민중인 가운데 2018년의 지배구조 개편안 등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점검해본다.(편집자주)
정의선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관건은 그가 가진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가치 극대화’다.
현대차그룹이 2년여 전 시도했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방식이 어떤 합병 비율로도 주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결국 계열사간 분할합병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하는 ‘정공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른다.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 회장이 직접 매입하면서 순환출자고리를 끊고 대주주→현대모비스→현대차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게 가장 단순하고 시장의 저항 우려도 없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즉 순환출자 지분은 기아차 17.3%, 현대제철 5.8%, 현대글로비스 0.7% 등 총 23.7%다. 여기에 향후 정몽구 명예회장이 소유한 7.1%의 지분까지 상속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총 30% 이상의 지분율로 안정적인 지배가 가능하다.
문제는 지분 매입을 위한 자금 마련이다.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안은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존속회사) 지분매입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이었으나, 분할합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높은 비용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현대모비스 지분 23.7%를 매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5조2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의 현금 가치는 비상장사 주식 포함 총 8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들 중 처분이 불가능한 핵심 계열사 지분(현대모비스, 현대차)을 제외하면 최대한 현금화할 수 있는 지분은 4조원대까지 떨어진다.
지분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의 손실도 감안해야 한다. 대주주가 지분을 대거 매각하면 주가가 하락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고, 세금도 내야 한다. 이 경우 실질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3조원 수준까지 떨어진다. 필요한 자금보다 2조원가량 부족한 셈이다.
정 회장의 가용현금을 늘리려면 매각 대상 지분 중 가장 비중이 큰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를 보유중이다. 지분 평가액은 1조6000억원을 조금 넘는다.
기업이 통상적으로 영위하던 사업을 유지하면서 기업 가치를 급격히 끌어올릴 여지는 크지 않다. 기존에 사업 영역에 없었던 신사업에 진출해 소위 ‘대박’을 터뜨려야 획기적인 기업 가치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내세우고 있는 신사업은 수소 및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달 23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수소운반선을 통한 해상운송, 유통과정에서의 플랫폼 구축을 통한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있고, 전기차용 배터리의 리사이클링·렌탈·충전 등과 관련된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5월 한국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과 액화수소운반선 공동 개발을 위한 기본 설계에 돌입했으며, 최근 2만㎥ 급 상업용 수소운반선의 기본 설계 도면이 세계 최초로 한국선급과 라이베리아 기국으로부터 기본 인증(AIP)을 획득했다.
정부와 현대자동차그룹이 손잡고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수소전기차 등 수소경제 관련 사업이 빠른 진도를 보일수록 액화수소의 해상운송을 선점하게 될 현대글로비스의 기업 가치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배터리를 매입해 장기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택시, 상용차, 자가용 등에 렌탈로 매출을 일으키는 방식의 사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택시나 상용차는 주행거리가 길어 배터리의 생애주기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에 착안, 글로비스가 플랫폼 업체로 들어가 업그레이드나 교체 수요를 렌탈로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국내 3대 배터리 제조사 중 하나인 SK이노베이션과 손잡고 모빌리티-배터리사 간 협력 체계를 검증하기로 한 바 있다. 검증 대상에는 리스·렌탈 등 전기차 배터리 판매, 배터리 관리 서비스,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 등이 포함돼 있다.
수소나 배터리 관련 신사업은 해당 분야의 시장 생태계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당장 가시적인 매출을 일으킬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수소 관련 사업은 1~2년 내에 조 단위 매출로 가지 않고 5~10년을 보고 준비하고 있다”면서 “배터리 사업도 시장 성장 속도에 맞춰 전체적인 생태계 구축 정도에 따라 매출 기여가 되는 것을 시차를 두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글로비스의 수소·배터리사업 진출이 주목받는 것은 환경 이슈와 관련된 미래 유망 사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시장 분위기 때문이다. 연간 기준으로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는 테슬라 주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실체도 없는 수소전기트럭을 앞세운 니콜라가 여러 차례 주가 폭등을 기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가 신사업으로 내세운 수소·배터리 관련 사업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물론, 현대차그룹의 미래 전략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시장에 충분한 신뢰를 심어줄 수 있다”면서 “지배구조개편 이슈와 별개로 기업 가치가 꾸준히 상승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