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한진, 과도한 상속세로 사업·경영 부담 직면
오너 경영 체제 지배력 약화로 변화·혁신 발목잡힐판
코로나19 이후 생존 절실...상속세제 개편 논의 필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우리 기업들의 영속성을 위협하고 국가 경제의 미래마저 뒤흔들고 있다. 기업 승계를 죄악시하는 징벌적 상속세율은 기업가정신은 쇠퇴시키고,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미래 산업 변화를 지휘할 컨트롤 타워를 끌어내리는 원흉으로 지목된다. 현행 상속세율의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은 주로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가 자리잡힌 국내 대기업 그룹들에게는 지배력 유지에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내는 연부연납제도와 주식담보대출 등을 이용해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는 그룹 경영권과 지배력 유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너의 결정에 따라 대규모 투자와 대형 인수합병(M&A)이 이뤄지는 국내 기업들의 특성상 과도한 상속세는 오너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그룹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시기가 중요한 투자와 M&A 등 사업적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무역분쟁 등 보호부역주의 심화로 더욱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피해갈 수 없는 상속세 문제...‘억’소리 나는 규모에 한숨
국내 최대 기업 그룹인 삼성도 상속세는 쉽지 않은 문제다. 최근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인데 그 규모가 정말 ‘억’ 소리가 날 정도다.
이 회장이 남긴 유산 중에서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을 제외하고 보유주식만으로도 주가 등락을 감안해도 평가액이 18조원을 넘는다.
30억원 이상 증여시 적용되는 최고세율 50%에 경영권 프리미엄(보유 지분이 기업의 최대주주 또는 특수관계인일 경우)으로 붙는 할증(최대주주 지분율에 따라 상속자산 가치를 10~30% 높게 반영)을 감안하면 최대 65% 수준이다.
이를 감안해 계산하면 상속세로 납부해야 할 금액만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속받는 주식의 절반 이상을 상속세로 내야만 하는 상황으로 오너 일가의 보유 지분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 내부적으로는 이미 상속세 재원 마련에 대한 계획이 수립돼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상속받는 주식 가치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은 이무리 국내 최대 기업 그룹 총수라고 해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먼저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한진그룹도 지난해 4월 부친 조양호 전 회장의 별세로 조원태 회장 등 오너 일가가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17.7%를 상속받으며 2700억원대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해 6분의 1에 해당하는 460억여원을 1차로 납부한 상태이지만 아직도 2200여억원이 남은 상태로 주식담보대출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조 회장은 지난 8월 두 차례에 걸쳐 한진칼 주식 총 150만주를 담보로 400억원을 마련해 이같은 관측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 2018년 5월 고 구본무 회장의 별세로 그룹 총수 자리를 이어받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에게도 상속세는 부담이다. 구 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보유 지분 평가액(1조1890억원)의 60%에 해당하는 약 720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를 납부하기 위해 주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오너 지배력 약화→급변하는 환경 대응력 약화 초래
이러한 전문학적인 상속세는 오너 경영 체제가 중심인 국내 대기업 경영 현실상 대응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요 대기업들의 전략적 결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대규모 투자와 M&A는 통상적으로 총수가 중심이 돼 이뤄지는 만큼 오너의 지배력 약화는 이를 어렵게 만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삼성의 초격차 경쟁력 지속, 현대자동차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전환, SK의 딥 체인지 등 주요 그룹사들의 변화와 혁신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지난 2018년 180조원 투자에 이어 지난해 시스템반도체 분야 133조원 투자를 발표했는데 이는 지배적 지분을 보유한 총수가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 경영이 가능할때만 이뤄질 수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10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한 재원 마련에 신경쓰다보면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또 자금 부담이 증가하면서 시기가 매우 중요한 M&A도 성사시키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9조원에 하만을 인수한 이후 대형 M&A를 하지 못하고 있다.
상속세는 경영권 안정화에 해가 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한진그룹의 경우, 조원태 회장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등 3자연합과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펼치는 상황으로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매입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한 재원 마련에 전력하다보면 안정적 지배력을 갖추기 위한 지분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으로 사업 확대에 추가 자금 마련도 필요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상속세는 이래저래 부담이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과도한 상속세가 대기업 총수들에게 자금부담을 지우면서 오너 경영을 통한 변화와 혁신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상속세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경영환경이 어떻게 변화할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고경영자(CEO)들이 생존을 위한 변화와 혁신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상속세 부담이 짓눌려야 되겠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