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 되면 다시 꺼내고 싶은 인디 음악들
윤딴딴 ‘겨울을 걷는다’·정준일 ‘겨울’·짙은 ‘디셈버’ 등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는 ‘겨울 노래 구출 작전’이 방송됐다. 유재석이 직접 다시 듣고 싶은 겨울 노래의 가수들을 섭외해 공연을 여는 프로젝트다. Mr.2, 탁재훈 등이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히트곡들을 불렀고 에일리, 김범수, 윤종신, 존 레전드, 이문세까지 이어진 공연은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선물로 기억된다.
겨울은 ‘발라드의 계절’로 불렸다. 연말연시, 겨울에 가장 선호되던 음악이 발라드였다. 하지만 올해 겨울은 유독 아이돌과 트로트에 밀려 발라드 음악이 좀처럼 들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연말 공연이 대부분 취소되면서 발라드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놀면 뭐하니?’의 이번 프로젝트는 여전히 존재하는 발라드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반가운 기획이었다.
그러나 방송이라는 특성상, 정해진 시간 안에 여러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것엔 무리가 있었다. 실제로 이날 섭외된 아티스트들은 이미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거나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놀면 뭐하니?’가 놓친, ‘인디씬의 겨울 노래 5곡’을 소개하면서 쓸쓸한 겨울을 보내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 윤딴딴 ‘겨울을 걷는다’
‘겨울을 걷는다’는 지난 2014년 2월 발매된 윤딴딴의 데뷔곡이다. ‘핫’한 인디 뮤지션인 그의 대표곡이기도 하다. 윤딴딴의 공연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곡인만큼, 팬들 사이에서도 명곡으로 꼽힌다. 그의 ‘효자곡’으로 꼽히는 노래들 중 압도적으로 상위에 있기도 하다. 특히 현역 군인들이 좋아한다는 웃픈(?) 일화도 있다. SNS를 통해 ‘군 시절 자주 들었던 노래’라고 언급하는 이들이 다수다.
이유는 노래가 실제 군대에서 이별한 후에 전 연인이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느낀 우울감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감성적인 목소리 그리고 서정적인 이별가사로 읽히지만, 이와 대조되는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 덕분에 조금은 따뜻한 이별노래로 완성됐다. 그렇다고 또 마냥 발랄하진 않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픔을 어둡지 않게 풀어내면서도 곡이 진행될수록 먹먹한 여운까지 남긴다. 겨울 끝자락의 이별 노래인데 동시에 따뜻한 ‘힐링’까지 주는 묘한 감성의 곡이다.
◆ 정준일 ‘겨울’
정준일은 ‘겨울 노래 장인’으로 불린다.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그의 음악이 유독 겨울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린다. 때문인지 앨범의 수록곡들 중 겨울을 상징하는 곡 제목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2012년부터 매년 겨울이 되면 개최되는 그의 대표적인 브랜드 콘서트에도 ‘겨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콘서트는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소편성의 악기와 목소리만으로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겨울’은 2011년 발매된 솔로 1집 ‘러버스’의 수록곡이다. 타이틀곡인 ‘안아줘’가 방송을 탄 이후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뒤늦게 역주행 했지만, 인디 팬들 사이에선 발매 당시부터 화제를 모으던 곡이었다. 타이틀곡은 물론 수록곡이었던 ‘겨울’도 상대적으로 주목이 덜 되긴 했지만, 따뜻하면서도 담백한, 그리고 쓸쓸한 그의 감성이 여실이 담겨 있는 곡이다. 겨울 뿐만 아니라 정준일의 곡 대부분은 겨울 감성과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나 차가운 겨울의 새벽에 들으면 더욱 좋다.
◆짙은(Ziitten) ‘디셈버’(DECEMBER)
‘디셈버’는 2009년 발매된 짙은의 싱글이다. 이듬해 발매된 EP 앨범 ‘원더랜드’에도 실렸다. 이 곡은 듣자마자 아주 추운 겨울의 밤이 생각난다. 음악 자체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짙은의 깊은 감성도 압도적이지만, 무엇보다 섬세하고 시적인 가사에 집중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더 흠뻑 빠지게 된다.
흔한 사람과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들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의 음악을 ‘불친절한 음악’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듣게 되는 이유는 곱씹을수록 진하게 느껴지는 말 맛 때문이다. 쉽게 읽히는 연애소설보다 몇 번씩 곱씹어야 하는 시집과도 같다. 그러니까 ‘디셈버’도 꼭 두 번, 세 번 아껴두고 한 번씩 꺼내보면 이 곡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빌리어코스티 ‘보통의 겨울’
2015년 발매된 빌리어코스티의 정규 2집 ‘보통의 겨울’은 평단과 대중의 고른 평을 얻었던 수작이다. 사실 그의 노래는 언뜻 평범한 듯 보인다. 강렬한 자극이 없다. 다만 노래에 담긴 공감 포인트와 부드러우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는 누군가의 그리움과 추억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보통의 겨울’은 작정한 듯 아련함과 쓸쓸한 감성을 그리면서 겨울만 되면 자연스럽게 꺼내보게 되는 음악이다. 가사가 주는 따뜻함 때문인지, 주로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듣게 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이 곡은 힘들었던, 혹은 특별했던 기억들이 또 다른 내일을 버텨낼 수 있는 추억이 될 수 있다고 위로해준다.
◆밴드 설(SURL) ‘눈’
‘눈’은 동갑내기 친구 네 명으로 구성된 밴드 설의 첫 번째 EP 앨범 ‘안트 유?’(Aren't You?)의 타이틀곡이다. 이 앨범은 2018년 발매됐는데, 이 해에 ‘2018 신한카드 루키 프로젝트’ ‘EBS 올해의 헬로루키’에서 각각 대상과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슈퍼루키 밴드로 급부상했다. 데뷔하던 해 내놓은 앨범임에도 연주력이나, 보컬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눈’은 모던록 장르로 멤버들의 서정적의 연주가 돋보인다. 여기에 보컬 설호승의 몽환적이고, 쓸쓸한 보이스까지 더해지면서 완벽한 ‘겨울 노래’가 됐다. 눈이 오늘 날 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울적한 마음을 달래는 사람도 있다. 이 노래는 그들의 쓸쓸함을 이야기한다. 수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지만, 요즘처럼 힘든 상황에 놓여 메마른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