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철폐 외쳐온 박용만 전 회장과 온도차…"규제 나온 원인 파악해야"
양향자 당정청+재계 협의체 제안에는 "정치적 중립 위배 여부 살펴야"
"이익공유제 취지는 좋지만 법이나 룰로 만드는 것은 고민 필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통을 통해 규제가 나오게 된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가 있다면 기업 스스로가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29일 중구 상의회관에서 진행된 타운홀 미팅 이후 열린 대한상의 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의 기업 규제 강화에 대응한 경제단체 역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최 회장은 “규제가 자꾸 생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저변에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규제가 나온 것이지 그냥 규제하기 위해 규제를 만들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이 이유가 재고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소화돼야 하는데 그 활동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규제하지 말라고 막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올바르게 보이지도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또 “규제가 원래 규제를 하려던 정신과 일치하는가, 효과가 있었는가,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닌가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면서 “왜 자꾸 기업이 규제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소통을 통해 그 문제에 관해 오해가 있었다면 풀고, 문제인 게 맞다면 반영해서 저희(기업들의) 행동을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전임 박용만 회장과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 박 회장은 과거 국회를 여러 차례 방문해 규제 법안 저지에 노력하고, 기자간담회와 개인 SNS를 통해 기업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재임기간 내내 기업 규제 철폐를 주장해 왔다.
최 회장은 반기업 규제의 추가 입법을 막아달라는 기업들의 요청이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우리가 반대하면 그 규제가 없어지는가?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큰 흐름으로 보면 과도한 규제를 통해서 자유도가 침해되는 것은 기업 뿐 아니라 어떤 단체도, 개인도 원치 않겠지만, 규제가 왜 나왔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거기서부터 문제가 풀린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다른 경제단체들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협력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오픈돼있다. 누구하고는 하고 안하고 그런 생각 없다”면서 “다만 경제단체 특성과 롤에 있다 보니 그에 맞춰서, 서로 협력을 하겠다”고 답했다.
최 회장은 대한상의가 일부 대기업을 대변하는 데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도 일축했다. 그는 “오히려 참여를 더 해달라고 대기업에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 아닐까”라고 반문하며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들 관련한 많은 문제와 거기서 우리가 할수 있는 얘기들이 무엇일지 소통의 채널을 잘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서울상의 회장 취임과 함께 스타트업 및 IT 분야 젊은 경영진들을 부회장단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지금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면 어떤 방법론을 쓸까에 대해 생각했는데, 그중 제일 쉽게 나온 것은 IT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면서 “데이터에 있어서 그런 분들이 많이 참여하면 그분들이 가진 새로운 시각, 신세대와 소통 많이 하신 분들이니까 그런 분들이 감각 있다고 생각했다. 데이터 갖고 문제 풀어나가는 것에 그분들이 더욱 오랫동안 먼저 하셨으니까 그분들의 참여를 통해 방법론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정청 및 재계 간 3+1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과 관련해서는 “대한상의는 정관에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돼 있는 만큼 어느 한쪽에만 무엇이 요구되는, 어느 한쪽만과 무엇을 하는 것은 정관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해봐야 한다”면서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아직 공식적으로 요청받은 것도 없다”고도 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김범진 배민 대표의 재산기부와 같은 기업가들의 기부 문화를 만들어가볼 의향은 없냐는 질문에 최 회장은 “기부문화 확장에 대해 적극 찬성한다”면서도 “하지만 기부문화가 강제 기부합시다, 이런식으로 해야한다는 식으로 가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개인적 상황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하되 그 자발성이 사회 저변에 확대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여당에서 추진 중인 이익공유제와 관련해서는 “협력에서 나온 산물을 같이 나눈다는 게 좋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그걸 법이나 룰로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 등의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미-중간 헤게모니 싸움으로 생각할 수 있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만한 사안”이라며 “해법을 찾고 길을 모색하는 데는 좀 더 창의적인 생각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환경문제는 어차피 세계 공통이고 이 문제는 미-중 갈등을 넘는, 갈등과 헤게모니 보다 더 높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스피드업하고 치고 나간다고 생각하면 우리 건강을 회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론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이 SK그룹을 이끌면서 선제적으로 강조해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관련해서는 “ESG는 디테일에 승부가 달려 있고, 친환경도 그 효과를 측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창의성을 통해 가장 우수한 기술이나 공법, 방법론 만들어서 세계 리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걸 규제라고 보지 말고 신 트렌드, 신 사업이라고 봐야 한다. 규제측면에서 쓰기 보다는 인센티브 측면에서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