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립 기간 중에 3월 대선 직면
대선 결과에 판 뒤집힐 가능성↑
민감한 원전은 논의대상서 배제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가운데 중간기인 2035년까지 전력계획을 담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최종안을 확정짓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년 대선 정국과 차기정부가 새롭게 수립하는 에너지 정책 여파를 감안하면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셈법이 복잡해졌다. 10차 전기본은 탄소중립과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해 어떤 '무탄소 전원'으로 전력믹스를 구성할지가 핵심 쟁점이다. 현재 대선후보들은 무탄소 전원에 대한 각론을 서로 달리하고 있다. 세부적인 전원믹스 계획을 미리 수립해놓으면 선거 결과에 따라 판이 뒤집힐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에 정부는 대선 전까지 숨고르기에 들어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10차 전기본 첫 논의를 위해 마련된 전력정책심의회에서도 형식적인 이야기만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7일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제6차 전력정책심의회를 개최해 10차 전기본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심의회에 참석한 한 전력정책심의위원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전원믹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큰 틀에서 '탄소중립, NDC 달성이라는 도전과제가 있으니 잘 만들어봅시다'식 상견례 자리였다"며 "회의 자료도 산업부에서 배포한 한 장짜리 형식적 문건이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탈석탄 의지는 드러내면서도 탈원전은 거론하지 않은 점도 선거 전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날 배포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착수' 보도자료에서 "2030 전환부문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석탄발전 감축을 전원구성에 반영하겠다"면서도 원전, 소형모듈원전(SMR), 탈원전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원전은 내년 대선의 뜨거운감자다. 주요 대선후보들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도 역력하다. 대선후보 모두 탄소중립을 위해 무탄소 전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실행방안을 담은 각론에서는 신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 등으로 나뉘어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정부가 전력믹스에 섣불리 원전을 배제할 수 없는 주된 이유다.
산업부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커버하기 위한 전원으로서 SMR은 정부 내에서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10차 전기본에 반영될지 안 될지는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지금은 (원전 혹은 SMR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에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 회의를 하며 대안을 찾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 10차 전기본에는 석탄발전 감축에 따른 LNG발전 전환, 재생에너지 대폭 확대,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전원을 전원구성에 반영하는 계획 등은 적극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전기화 수요도 수급 계획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저장장치 확대(Storage Mix), 계통 안정성 보강 방안 등 변동성 대응체계 등도 10차 전기본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변동성 대응 차원에서 저장장치 확대는 이번 10차 전기본 논의의 대상"이라며 "ESS, 양수발전을 기본 틀로 하되 그외 다른 대안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0차 전기본은 총괄분과위원회를 거쳐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된 수요소위, 설비소위, 제주수급소위 등 실무소위와, 수요전망, 수요관리, 신뢰도, 정책, 신재생, 전력망 등 분야별 워킹그룹 분야별 워킹그룹을 운영해 주요 과제를 논의한다. 정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관계부처 협의, 국회 상임위원회 보고, 공청회를 거쳐 내년 말 전력정책심의회에서 최종안을 심의·확정할 예정이다.
이원주 산업부 전력혁신정책관은 "10차 전기본은 무탄소·청정에너지 전원구성으로의 전환 가속화와 전기화 수요·재생에너지의 대폭 확대에 대비한 안정적 전력수급과 계통 운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며 "각계각층 전문가들이 제시한 다양한 의견을 수급계획 수립 과정에서 적극 반영하고 향후 다양한 전문가 소위 등을 구성·운영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전기사업법 제25조에 따라 전력수요를 전망하고 이에 따른 전력설비와 전원구성 등 공급계획을 수립하는 15년 단위 계획. 2년마다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