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16일 개봉·'킹 리차드' 24일 개봉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는 영화에 자주 쓰이는 소재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라면 그 시대적 배경과 환경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응한 이야기를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잘 알려진 인물이라면 이미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관심까지 보태진다. 그러나 '역사가 스포'라는 말처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다면 영화의 줄거리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어, 이를 재미 반감 요소로 꼽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에 실존 인물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사실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동시에 신선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사건의 순서를 압축하거나 허구의 이야기를 가미하는 등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
국내에서 개봉을 앞둔 두 편의 할리우드 영화 '스펜서', '킹 리차드' 역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 다이애나비 왕세자와 테니스 스타 비너스·세레나의 아버지 윌리엄스 리차드의 이야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펜서'서는 세기의 아이콘으로 불린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1년 왕실 가족과 샌드링엄 별장에 모여 보내는 크리스마스 연휴 3일 동안의 모습을 스크린에 구현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영국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찰스 왕세자의 불륜과 왕실의 냉대 끝에 이혼한 후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 간 인물이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스펜서'는 ‘왕비가 되지 않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기로 결심한 왕세자비의 이야기다. 거꾸로 된 동화다. 나는 실제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정에 항상 놀라움을 표해왔고, 그 결정이 매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영화의 핵심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탐험하고 싶었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힌 바 있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다이애나비의 실제 이야기에 다이애나비가 느꼈을 법한 심리적인 고통을 상상력으로 만들어내고 헨리 8세에게 처형당한 왕비 앤 불린의 환영을 더해 '스펜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다이애나비의 평생이 아닌, 3일간으로 시간을 압축해 다이애나비는 물론 찰스 왕세자(잭 파딩 분), 그레고리 소령(티모시 스폴 분), 왕실 셰프 대런(숀 해리스 분), 의상 디자이너이자 그의 곁을 지킨 매기(샐리 호킨스 분)와의 관계에도 초점을 맞춘다.
특히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환영을 등장시키는 연출을 택했다. 앤 불린은 헨리 8세와 결혼한 후 왕자를 낳지 못하자 간통의 오명을 쓰고 처형돼 '비운의 왕비'라 불린다. 앤 불린의 환영은 다이애나비가 불륜을 저지른 찰스 왕세자로부터 외면받은 자신의 처지를 대입시키게 만들며 그가 겪는 불안과 공포를 극적으로 만들어냈다.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은 '킹 리차드'는 무려 20여 년간 세계 최강의 테니스 제왕으로 군림한 비너스,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와 딸들을 키워낸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 그리고 기꺼이 한 팀이 되어준 가족들의 감동적인 여정을 그린 실화 가족 드라마다.
'스펜서'가 다이애나비가 왕실 가족과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는 3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면 '킹 리차드'는 리차드 윌리엄스가 두 딸 비너스, 세레나가 태어나기 전, 78페이지에 달하는 챔피언 육성 계획을 세운 때부터, 두 딸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을 거쳐 1994년 비너스가 프로 전향 대회에 출전해 산체스 비카리오에게 아쉽게 패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리차드 윌리엄스는 어려서부터 인종 차별에 시달려왔고 자신의 딸들에게는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의지가 지금의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비너스와 세레나의 위상에 자양분이 됐다. 비너스의 실력을 알아본 코치는 주니어 대회에 내보내며 테니스계 샛별의 등장을 알렸으나, 리차드 윌리엄스는 두 딸이 어리다는 이유로 대회 참가를 불허했다. 모두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주니어 대회를 참가하지 않고는 스폰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프로가 되기도 힘들었다. 누군가는 리차드 윌리엄스의 이런 행동을 무모한 도전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비너스,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는 30차례 그랜드 슬림 단식 우승, 6개의 올림픽 메달을 획득, 단식 122개, 복식 28개 타이틀 획득이라는 위대한 결과를 일궈냈고, 리차드 윌리엄스의 '무모한 도전'은 '철저한 계획'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불가능을 믿지 않았던 아버지의 이야기인 동시에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한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가 스포츠를 배경으로 이뤄진 셈이다.
비너스, 세레나 윌리엄스는 한 개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흑인 여성의 성장을 대변한다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꿈과 희망에 상징성을 더한다.
국내에선 아직 개봉하지 않았지만 북미에서 먼저 선보인 두 작품의 새로운 내러티브는 통한 것으로 보인다. '스펜서'는 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만 26개를 수상했다. '킹 리차드'는 제57회 시카고국제영화제 관객상과 로튼 토마토 관객 지수 98%를 기록했으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윌 스미스는 이 영화로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제28회 미국 배우 조합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