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맥주는 온라인 판매 안 되는데… “전통주만 예외로 허용”
외국인·유명 연예인 앞세운 술 전통주 인정…분류법 허점
국내 기업들이 만든 술도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 해 ‘역차별’
중장년층이 찾는 비싼 술로만 여겨졌던 증류식 소주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힙합 가수 박재범이 ‘원소주’를 선보이면서 젊은 층의 관심을 끌고있다. 전통주 업계에선 이번 열풍으로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전통주를 접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다만, 주류업계서는 국순당의 ‘백세주’, 광주요의 ‘화요’,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 등 국내 기업들이 내놓은 증류주가 전통주로 인정 받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 국적의 연예인을 앞세운 증류주가 전통주로 분류된 것은 어불성설이란 부정적 입장도 보이고 있다.
1일 원스피리츠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달 31일 오전 11시부터 ‘원소주 온라인 몰’을 통해 원소주를 정식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품 판매 뿐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 스토리를 만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단장하고, 1인당 구매수량이 하루 6병으로 제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원소주는 100% 국내산 쌀을 사용하고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다.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희석식 소주와 달리 지역특산주로 분류돼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증류식 소주는 대부분 증류기에서 1회만 증류하는 전통 술이다. 많아도 2~3회에 그친다. 증류 횟수가 적을수록 원료의 풍미가 술에 스며들어 가치가 높다. 200회 넘게 증류를 거쳐 추출한 알코올에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 보다 증류식 소주가 더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만 하더라도 높은 가격은 이 시장을 키우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만나 홈술 문화가 일상이 된 데다,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를 추구하는 MZ세대가 주요 고객층으로 부상하면서 ‘핫’한 술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특히 힙합 가수 박재범이 이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전통주에 대한 이미지도 크게 바뀌었다. 전통주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힙합가수인 박재범이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전통주를 생산·판매한다는 점이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면서 분위기 전환에 일조했다.
소비자들의 관심은 곧 판매로 이어졌다. 원소주는 불티나게 팔렸다. 원스피리츠 관계자에 따르면 원소주는 첫 번째 팝업스토어를 통해 출시 일주일 만에 초도물량인 2만병이 모두 판매된데 이어, 두 번째 팝업스토어에서도 1만개 선착순 한정판매에 가뿐히 성공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수요 증가 등 주류 전반에 프리미엄에 대한 니즈가 늘어난 영향”이라며 “이전에는 고가의 소주를 소비한 연령대가 높았다면 지금은 젊은층도 프리미엄 소주에 대한 가치를 알고 이를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 전통주 업계, 시장 확대 기대 vs. 토종 주류기업 역차별
원소주 인기에 전통주 업계도 설레는 모습이다. 원소주를 접한 젊은 세대가 다른 전통주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원소주 열풍에 힘입어 다양한 전통주들이 빛을 보고 경영난 또한 이겨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주류업계 일각에서는 말 못할 불만도 상당하다. 전통주 분류법에 따른 애매한 기준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힙한 연예인을 앞세운 원소주의 인기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이유기도 하다.
현재 온라인에서 판매가 가능한 술은 전통주뿐이다. 많은 업체가 온라인 판매 혜택을 얻기 위해 전통주라는 주류 분류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전통주로 인정받게 되면 주세가 50% 감면되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현행 주세법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전통주산업법)에 따르면 ▲국가가 지정한 장인이 만든 술 ▲식품 명인이 만든 술 ▲지역 농민이 그 지역 농산물로 만든 술을 전통주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세가지 요건 중 하나만 충족하면 전통주로 인정이 된다.
우리 술 제조업체들은 이같은 전통주 기준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막걸리와 백세주, 일품진로 등은 기업이 만든다는 이유로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우리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해외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이 오히려 여러가지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토끼소주’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탄생한 이 제품은 국내에서 전통주로 분류돼 판매되고 있다. 토끼소주는 영어 강사로 활동하던 미국인이 뉴욕으로 돌아가 201년 조선시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소주인데 지역 농산물로 제조해 전통주로 인정을 받았다.
반면 국순당은 ‘우리술 복원 사업’을 전개하고 해외 수출을 통해 'K-주류'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지만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 역시 국내산 쌀을 사용해 제조하고 있지만 생산주체가 농업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통주로 분류되지 못했다.
업계서는 똑같은 술인데 정작 국내 기업이 만든 술은 제외한 채 기타 제품에 특혜를 주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통주로 인정 받은 다른 술이 일부 지역경제에 일조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엔 수익이 투자사 또한 외국계 엔터사로 귀결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외국계 기업이 국내서 온라인 판매를 통해 유통 채널에서의 우위를 점하고, 수출을 통해 영토를 빠르게 확장해 나가는 동안 정작 국내 기업은 나라가 만든 허들에 걸려 성장의 날개가 꺾이게 됐다는 점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화요, 일품진로 등 전통 방식으로 제조되는 술이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뉴욕에서 만들어진 ‘토끼소주’ 라든지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원소주’ 등이 버젓이 전통주로 분류돼 판매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전통주 온라인 판매 규제를 일부 완화해준 취지가 전통주 활성화에 있는데 현재는 정작 전통주와 거리가 있는 와인이나 외산 소주가 혜택을 받고 있다”며 “이제라도 현행 전통주 기준이 허점이 많음을 인정하고 전통주의 개념과 기준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