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사이클 이어갈 자금 적기 투입이 경영정상화 열쇠
'경영자의 마지막 각오' 외친 곽재선 회장 의지에 기대
“경영자의 마지막 각오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여러분과 함께 건강한 회사를 만들겠다.”
지난 1일 쌍용자동차 회장으로 취임한 곽재선 KG그룹 회장이 밝힌 각오다. 경기화학(현 KG케미칼)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의 M&A(인수합병)를 통해 KG그룹을 일으킨 그가 쌍용차를 인수해 정상화시키는 것을 마지막으로 경영자로서의 소임을 마무리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사실 쌍용차를 이끄는 것은 곽 회장에게 큰 도전이다. 경기화학, 웅진패스원(현 KG에듀원), 동부제철(현 KG스틸), KFC코리아, 할리스커피(현 KG 할리스 F&B), HJF(현 KG프레시) 등 그동안 KG그룹이 인수해 온 회사들에 비하면 쌍용차는 덩치가 월등히 크다.
그룹 편입 이후 경영정상화를 통해 안정적인 계열사로 자리 잡는다면 그룹을 한 단계 도약시킨 성공적인 M&A로 기록되겠지만, 적자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다른 계열사들에게까지 부담을 준다면 ‘승자의 저주’로 불릴 수도 있다.
곽 회장도 그 무게를 절실히 느꼈기에 ‘경영자의 마지막 각오’를 언급한 것이리라. 성공이건 실패건 곽 회장 체제에서의 M&A는 쌍용차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쌍용차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기업이다. 쌍용그룹에서 탄생해 대우그룹, 중국 상하이자동차, 인도 마힌드라까지 여러 대주주를 거쳤지만 어느 곳도 성공적인 M&A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룹 내에서 세컨드 브랜드 취급을 한 곳도 있었고, 기술만 빼먹고 ‘먹튀’를 한 곳이 있는가 하면, 별다른 지원 없이 알아서 회생하기만 바란 곳도 있었다.
완성차 기업은 ‘신차 사이클’이 이어져야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기존의 어떤 주인도 그런 여건을 마련해주지 못했다. 그게 쌍용차 경영정상화를 통한 ‘본전뽑기’에 다들 실패한 이유다.
현재 쌍용차에 긍정적인 바람을 몰고 온 것은 신차 ‘토레스’다. 출시 두 달 만에 6만 대의 계약물량을 확보하며 ‘대박’을 쳤다.
하지만 신차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희석된다. 아무리 인기가 좋은 차도 1년이 지나면 ‘신차’ 꼬리표가 떼 지고, 3~4년이 지나면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토레스의 성공에만 취해 있다가는 얼마 안 가 다시 부진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토레스의 인기가 식기 전에 후속타가 나와야 한다. 토레스 전동화 모델, 코란도 후속 KR10, 렉스턴 스포츠를 대체할 전기 픽업 등이 계속해서 투입돼 신차 효과를 이어가야 경영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신차 개발에는 수천억원의 비용이 투입된다. 아직은 진입 초기 단계인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신차를 내놓으려면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도 있다. 기존 인기 모델의 판매를 통해 거둔 수익으로 신차 개발비를 확보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구조지만, 쌍용차는 아직 그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
신차 사이클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 그동안 쌍용차의 이상적인 새 주인으로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기업’이 거론된 것도 그 때문이다.
KG그룹의 재계 순위는 쌍용차 인수 이전 기준 71위였다. 자금력에 의문이 있는 게 사실이다. 곽 회장도 쌍용차 인수 이후의 운영자금 투입 계획은 내놓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희망적인 부분은 곽 회장이 직접 쌍용차의 회장 자리를 맡았다는 점이다. 자동차 회사 오너의 명함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 회사를 살려내겠다는 사명감으로 M&A에 나섰음을 취임사를 통해 밝힌 만큼 그룹 차원의 총력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다.
직시해야 할 부분은 자금 투입의 규모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자금난으로 허덕일 때가 아닌, 앞으로 돈을 벌어다 줄 신차를 개발할 시기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토레스가 ‘J100’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공개됐을 때처럼, 렌더링 디자인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KR10도 원활한 자금 투입으로 적기에 출시돼야 신차 사이클을 이어갈 수 있다. 그게 쌍용차를 건강한 회사로 만들겠다는 곽 회장의 공언이 현실화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