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는 지지율 회복 절실한 민주당이 밀어붙인 법
중간선거 앞두고 2주 만에 상·하원 통과
북미산 전기차 밸류체인 마련위해 IRA 유예 또는 수정 필요
한국산 전기차 차별을 골자로 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국내 자동차-배터리업계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법안 마련·통과가 미 의회 차원의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이 IRA를 무리하게 밀어붙였고, 법안 발의 후 불과 2주 만에 상·하원을 통과하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7일 한·미 정·관계에 따르면 IRA 모태인 ‘더 나은 재건법(BBB)’은 총 4조달러(5500조원)에 이르는 재원 마련 우려 탓에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 이견으로 지난 1년 넘게 검토만 되다 올해 6월 좌초됐다.
더 나은 재건법은 대당 1만2500달러(1700만원)를 지원하는 전기차 보조금이 포함돼 있었다. 1만2500달러 중 7500달러(1000만원)는 원산지를 따지지 않고 지원하는 금액이며, 나머지 5000달러는 미국산 및 노조가 있는 공장에서 생산해야 추가로 지급받는 조건이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회복이 시급해진 민주당은 반등을 모색하기 위해 법안 규모를 4000억달러(550조원)로 축소시킨 IRA를 들고 나왔다.
이 과정에서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 전기차 보조금을 깐깐하게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조를 거부했다. 이에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조 맨친 의원을 따로 만나 '보조금 조항을 원하는대로 해주겠다'고 설득했다.
맨친 의원의 제안은 전기차는 북미에서 생산하고, 배터리 및 소재는 북미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하는 것을 전제로 대당 7500달러의 보조금 지원하는 것이다.
9월부터 중간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민주당은 8월 중 법안 처리가 시급한 만큼 이 제안을 대부분 적용했다. 미 의회는 7월 27일 법안을 공개했고, 며칠 뒤 세부 규정을 급조했다. 상원은 하계휴가를 앞두고 휴회에 돌입하기 직전인 8월 7일 기습적으로 IRA를 통과시켰다.
그 뒤 휴회에 들어간 하원은 같은 달 12일 의원들을 긴급 소집해 투표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총 의원 435명 중 절반인 200여명이 휴회로 출석하지 않고 대리투표로 진행하는 바람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IRA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 내에서는 법안 통과를 무효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법안이 발의된 지 불과 2주 만에 상·하원을 통과한 뒤 바이든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서명하면서 IRA는 밀실·졸속 추진 비판 속에 끝내 발효됐다.
업계 관계자는 “미 의회 내에서도 광화당 의원 뿐 아니라 미국 민주당 의원들조차 법안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표했다”며 “미국 행정부도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야 법안 전문을 전달받아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 의원이나 행정부조차 세부내용을 파악한 상황에서 IRA가 급박하게 추진되면서, 한국 정부나 민간기업들이이 사전이 이를 인지하고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내 기업들은 북미산 전기차 밸류체인 확보를 위해서라도 일정기간 IRA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한·미 정부 양자 간 협의체 가동으로 법 개정 및 행정 조치를 요구하는 동시에 유럽연합(EU), 일본 등과도 협력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7일 회동은 IRA 관련 양국 각료급 첫 만남"이라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장관급 협의) 채널을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