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만에 같이 무대에 오른 배철수와 구창모, 2시간 40여분 동안 열창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포문 열어 27곡 몰아쳐
배철수 “기적과 같은 순간이었다” 감격
“구창모와 환갑기념으로 일회성 공연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 그 전에는 노래를 하지 않을 예정이다.” (2011년 배철수)
“10년 전부터 송골매 라스트 앨범을 내고 마지막 전국투어 콘서트를 열자는 말을 많이 했다. 더 늙기 전에. 언젠가는 그런 기회가 있을 것이다.”(2011년 구창모)
마지막 앨범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환갑기념으로 공연을 개최하지 못했다. 그러나 배철수와 구창모는 송골매의 이름으로 결국 무대에 올랐다. 38년 만이다. 송골매 9집 기준으로는 32년만이다. 11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은 그렇게 또한번 가요계 역사에 한 줄을 추가하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가 됐다.
1978년 TBC 해변가요제에서 배철수는 활주로의 멤버로, 구창모는 블랙테트라의 멤버로 처음 만났다, 1979년 송골매를 결성한 배철수는 1982년 구창모를 영입했고 한국 가요계를 휩쓸었다. 1984년 구창모가 탈퇴해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송골매는 1990년 정규 9집을 끝으로 음악을 멈췄다. 배철수는 라디오DJ로 음악방송 MC로, 구창모는 솔로가수로 사업가로 한 세월을 보냈다.
시간은 그렇게 지났고, 칠순이 된 노장 록커들은 마지막 송골매의 전국투어 ‘열망’(熱望)의 무대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섰다. 팬들의 ‘열망’이 만들어 낸 결과다.
이날 공연의 시작은 불멸의 히트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였다. 당연한 첫 곡이었다. 다소 멋쩍은 듯한 표정의 배철수와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한 구창모가 팬들과 교감하기 위한 첫 열쇠를 돌렸다. 이어 배철수는 “송골매를 사랑하는 여러분 다 모이셨나요?”라고 외치며, 중장년들의 ‘청춘의 기억’을 아련하게 끄집어내는 가사의 ‘모여라’로 활짝 문을 열었다.
둘의 해변가요제 참가곡이었던 ‘구름과 나’(구창모)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배철수)로 연결시킨 에너지는 ‘처음 본 순간’ ‘한줄기 빛’ ‘방황’ ‘문을 열어’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 ‘희나리’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이 빠진 동그라미’ 등으로 채워 나갔다.
둘은 중간 중간 다채로운 입담으로 에너지를 정제시키기도 했다. 해변가요제에서 처음 만났던 이야기부터, 구창모의 송골매 탈퇴, 가요톱텐에서 많은 곡들이 1위를 한 것, 곡이 만들어진 배경 등을 이야기했다. 특히 배철수는 ‘그대는 나는’을 부르기 전에 1983년 3월 19일 KBS ‘젊음의 행진’ 당시 감전사고까지 웃으며 언급했다. 약 40년 만에 덤덤해 진 것이다.
칠순의 두 노장 록커들은 때때로 짓궂은 이야기로 서로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구창모 씨가 송골매를 배신하고 나가서 기분이 안 좋았다. 아들 이름은 (배)반, (배)신이라고 지으려 했다”라는 배철수의 공격(?)에 “저쪽(송골매 멤버들)은 다섯이고, 저는 혼자다. 다섯 명이 저를 몰아세우는데, 팀에 있을 수가 있겠나”라고 구창모는 반격(?)했다. 어쩌면 어디에선가 지겹게 했을 말이고, 송골매의 팬들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지만, 그들은 20대 청춘으로 돌아가 ‘또’ 말했고, 팬들도 그런 투덕거림에 ‘또’ 웃음을 지었다.
이날 공연에선 인상적인 장면도 종종 연출됐다. 특히 배철수가 연주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에게 온전히 무대를 내준 장면은 강렬했다. 배철수와 구창모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여느 콘서트와 달리 연주자들은 ‘존중’받았다. 이날 음악감독이자 베이시스트인 이태윤이 자신이 송골매 시절 불렀던 곡 ‘외로운 들꽃’을 열창하자, 무대 위 모든 스크린은 분할돼 연주자들 한명 한명을 모두 보여줬다. 스크린에 등장한 장혁(드러머), 전달현·이성열(기타리스트), 박만희·안기호·최태완(키보디스트)은 당연히 무대의 한 축이었고, 배철수는 이들을 “송골매 4기”라고 불렀다.
무대와 관객들 사이를 옮겨 다니고, 정제되고 응축됐던 에너지는 결국 ‘하늘나라 우리님’ ‘탈춤’ ‘세상만사’ ‘내 마음의 꽃+길지 않은 시간이었네’ ‘새가 되어 날으리’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앙코르곡인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모두 다 사랑하리’에서는 휘몰아쳤다. 배철수와 구창모는 관객들에게 일어나라 이야기했고, 관객들은 ‘떼창’으로 응답했다.
사실 배철수와 구창모가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공연의 시작을 알릴 때부터 체조경기장에는 단순히 ‘관객’이 아닌, 1만여 ‘송골매’들이 있었다. 44년 전 20대부터 송골매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 ‘송골매’부터, 이날 처음 부모님을 따라와 송골매의 노래에 접한 ‘송골매’가 있었다. 혹은 아이돌 노래 듣는 자신에게 핀잔 주던 아빠‧엄마가, 트로트를 열창할 세대일 것 같은 엄마‧아빠가 찢어진 청바지 입은 칠순의 록커에 흥분하는 모습을 본 ‘송골매’가 있었을 수도 있다. 공연 내내 날개를 치던 이 ‘송골매’들이 ‘모두가 사랑하리’에서 함께 날아오른 것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평생 저희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 순간인 것 같다”
수많은 히트곡이 펼쳐지고, 관객들의 추억이 소환된 이날 2시간 40여 분간의 콘서트는 배철수의 이 한마디로 응축돼 또하나의 추억으로 저장됐고, 날아오른 ‘송골매’들은 전설적인 밴드 송골매 역사의 한 부분이 되어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