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곡물협상 중단으로 밀값↑
식량주권 위해 가루쌀 진흥정책 적기
정부 “밀 의존도 낮추기 위한 최적 대안”
정부가 국제 곡물가격 상승 조짐에도 가루쌀을 앞세워 정면돌파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국내에 밀 가격 상승분이 2~3개월 시차를 두고 있는 만큼 내년부터 확대될 가루쌀 생산을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밀 가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곡물협상을 중단하면서 다시 치솟는 분위기다. 당장 곡물협상 중단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하루만에 밀 가격이 5.5% 급등했다. 아직 협상 여지는 남아있더라도 올해 초 밀 수출이 중단됐던 당시 수준까지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이같은 곡물 가격 상승에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그동안 준비해 온 밀 대체 품종인 가루쌀(분질미) 활성화로 밀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곡물 가격 인상에 대해 예의주시 하겠다면서도 대응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당장 국내 시장에 충격이 없는 만큼 상황을 보고 필요에 따라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곡물 가격 인상도 시차가 있으니까 국내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예의주시하는 단계”라며 “상황을 보면서 변화 정도에 따라 필요하면 즉각 대응하는 방식으로 대비 중”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식량주권・식량안보 차원에서 가루쌀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도 가루쌀이 지금과 같은 ‘식량 무기화’ 흐름에서 식량주권을 지킬 수 있는 최적의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효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은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가루쌀은 국제 곡물, 특히 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식량주권, 식량안보 등 우리 식량연구기관이 해야할 일은 오히려 명확했졌다. 가루쌀 생산확대 정책이 시의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서 원장은 언론 기고에서도 가루쌀 정책이 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국제적으로 식량 위기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제시한 방안이 외부충격에도 흔들림 없는 식량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 원장은 “농촌진흥청은 밀, 콩 등 주요 작물의 자급률 향상을 위한 품종 개발과 보급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수입 밀과 차별화한 맞춤형 품종 개발은 국산 밀의 자생능력을 키우는 첫걸음”이라며 “국립식량과학원은 국수용, 빵용 등 용도별 밀 품종과 알레르기 성분이 없는 밀, 항산화 효과가 높은 밀 품종 등을 개발해 국산 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농진청은 수입 밀가루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가루쌀용 품종인 ‘바로미2’ 등을 개발해 보급을 확대 중이다.안정적 생산을 위한 기술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쌀 과잉생산과 밀 수급 불안을 해소해 식량주권을 확보한다는 포석이다.
서 원장은 “식량주권은 이제 국방, 외교 못지않게 국가 존립과 경쟁력의 필수요건이 됐다. 통일벼부터 해들, 바로미2까지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연구개발 경험과 역량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며 “생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줄이고 품질과 수량,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품종과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와 지원에 매진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2027년까지 가루쌀 20만t을 공급을 추진 중이다. 이 정책이 시장에 안착되면 연간 200만t 밀가루 수요의 10%를 대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에는 가루쌀 재배 전문생산단지 10개소가 들어선다. 2027년에는 200개소로 늘어나게 된다.
내년부터 가루쌀을 재배하는 농가는 ‘전략작물직불제’ 신설로 인센티브를 받는다. 밀 전문 생산단지 중심으로 밀-가루쌀 이모작 작부체계를 유도해 가루쌀 재배 확대도 나선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안정적인 가공용 가루쌀 원료 공급-소비 체계를 구축해 식량 자급률을 높여 나갈 것”이라며 “국제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인 만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