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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향사랑 기부제, 핵심은 ‘가치의 연결’


입력 2023.02.15 14:29 수정 2023.02.15 14:30        데스크 (desk@dailian.co.kr)

제도 성공 위해 민간의 창의력과 활력 적극 끌어안아야

올해 ‘고향사랑 기부’라는 새로운 제도가 선을 보였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자발적인 기부를 통하여 건전한 기부문화를 바탕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 현안에 대응하려는 취지다.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줌으로써 지역의 재정 확충에 기여하고 지역소멸 등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때 ‘고향사랑’은 고향을 떠나 외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애향심으로 풀어 쓸 수 있지만,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새로운 관계와 연결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태생과 애착에만 호소해서는 장기적으로 제도의 안착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고향사랑 기부제와 함께 흔히 등장하는 개념이 이른바 ‘관계인구’다.


쇼핑몰처럼 구성된 고향사랑e음 답례품몰ⓒ

비록 특정 지역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더라도 그 지역의 이슈나 특산물, 활동 등에 공감한다면 일정한 관계를 맺고 동참할 수 있다. 고향사랑 기부제는 지역의 이야기를 알리고 기부를 통해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는 쌍방향의 소통 창구라 하겠다. 누구나 자신이 소중히 여기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가치가 있는데 지역의 이슈와 활동을 그러한 가치와 연결 시킬 수 있다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비슷한 품질의 사과들이 진열대에 놓여 있다고 가정해보자. 평소라면 자신의 필요와 기호, 가격 정도의 요소를 고려하여 사과를 구입할 것이다. 그런데 사과마다 독특한 이야기가 있고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신이 나고 자라거나 인연이 있는 곳에 애착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지역의 농산물인지, 환경오염과 친환경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재배 환경에, 공동체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지역 공동체가 재배에 어떻게 참여하고 수익금을 활용하는 지를 눈여겨볼 것이다. 혹시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남북한 농민들이 협력하여 생산했다는 이야기에 끌릴 것이다.


지정기부 가능한 네이버 해피빈ⓒ

이처럼 가치의 발견과 창출은 다양한 연결 지점을 만들어낸다. 고향사랑 기부제 역시 지자체의 자율성과 잠재력, 창의적인 제도 운용에 많은 기대를 걸고 출발했다. 근거 법률인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부금의 모금 및 접수, 기금 설치의 주체는 지자체이고,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행정안전부장관은 제도를 연구하고 지원하며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정보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 제도 추진의 중심에는 지자체가 놓여 있고 중앙 정부는 지도·감독을 통하여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도록 규정했다.


아직 출범 초기이긴 하지만 현행 법제와 운용 방식이 지자체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개별적인 전화와 서신, 전자적 전송매체의 이용, 호별 방문을 하거나 사적인 모임에 참석·방문하여 적극적으로 기부를 권유·독려할 수 없다. 같은 법 시행령은 여기에 더해 지자체가 주최·주관하거나 후원하는 모임이나 행사에서 적극적으로 기부를 권유·독려하는 방법까지 금지하고 있다.


법률은 또 고향사랑 기부금의 접수 방식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지정하는 금융기관, 행정안전부장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구축·운영하는 정보시스템을 이용한 결제, 지자체 청사, 그 밖에 공개된 장소에서 접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시행령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지정한 금융기관과 위 정보시스템에 한정하고 있고, 그나마 실제 운용 단계에서는 단체장이 금융기관을 지정할 수 없는 데다 행정안전부에서 구축한 정보시스템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법률 자체에도 고향사랑 기부제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요인이 다수 존재하는데 시행령으로 이를 더욱 옥죄는 모양새다.


정보시스템의 경우 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로부터 정보시스템 구축 및 운영비를 모아 ‘고향사랑e음’ 사이트를 운영하고, 사실상 기부금 모금을 독점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절차를 안내하고 기부를 받으며 지역별 답례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부 지자체를 선택하면 해당 지자체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답례품이 소개되어 있을 뿐 지역의 현안이나 문제의식, 기부금의 사용 계획 등을 담은 스토리텔링은 찾아볼 수 없다. 지역별 특산물 카탈로그를 들춰보는 느낌이다. 기부자의 선의에 기댄 채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 아래에서 이 제도가 얼마나 지속되고 활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제도 소멸’의 위기감마저 든다.


지정기부 가능한 다음 같이가치ⓒ

지자체 주도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지역과 주민을 적극적으로 연결해야 하고, 여기에는 무엇보다 창의적인 발상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현재의 중앙 정부의 소극 행정을 벗어던지고 지자체와 민간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플랫폼을 다변화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보다 먼저 ‘고향납세’ 제도를 운영한 일본의 경우 초기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후루사토 초이스’와 같은 민간의 기부플랫폼을 활용하면서 납세액이 크게 증가한 사실을 참고할만하다.


일본 지자체들은 지역의 특성과 관심에 맞춘 상품과 활동, 이슈를 개발하고 사전에 고향세의 사용 목적 및 대상을 밝히는 등 납세자(기부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공감을 얻고 있다. 납세 행위에 뚜렷한 동기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고령인구 간호와 이송 등 찾아가는 돌봄 서비스, 역사·문화유산 복원, 지역관광 활성화, 탄소 저감, 반려동물 보호, 심지어 로켓 개발까지 지자체가 내건 프로젝트는 실로 다채롭다. 답례품으로는 프로젝트와 연계한 지역 특산물뿐 아니라 관광, 체험 등 각종 현안과 성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가 기본적으로 납부해야 할 세금을 자신이 선택한 지역에 내는 제도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고향사랑 기부금은 자발적인 의사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부자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이슈의 개발, 기부 동기의 제공, 기부자 관리 전략이 더욱 절실하다.


그런데 행정안전부는 다양한 채널로 기부금을 접수할 경우 기부금 상한선을 초과하는지, 해당 지자체 주민인지 확인할 수 없고 기부금이 다른 곳을 경유해서 지자체로 입금되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민간 모금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문제는 행정정보 공유와 개인정보보호 시스템의 구축, 위반 시 환불 조치와 같은 사후제재 등의 안전판으로 해결할 여지가 충분하다. 과연 중앙 정부가 고향사랑 기부제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법령을 해석·적용할 의지가 있는지, 현재의 행정안전부 주도의 ‘고향사랑e음’에 안주한 채 지자체와 민간의 관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은 “행정안전부장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고향사랑 기부금 제도에 대한 주기적인 조사·분석, 연구 등을 통하여 기부가 활성화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제12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재정확충의 길을 모색한다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기부 활성화 전략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선택에 따른 플랫폼을 다변화하는 한편, 행정안전부는 업무지원과 정보제공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가치를 중심으로 기부자와 지역 간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민간의 역량을 적극 끌어안고 활용해야 한다. 고향사랑 기부제의 안착을 위해 민관협력과 창의적 발상이 절실하다.


함보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생명)


*외부인의 기고나 칼럼은 데일리안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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