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진먼다오 해역 불법조업 단속중 中 어민 두명 목숨 잃어
中 해경국, 사고 발생 대만해협서 상시 순찰활동 및 훈련 선언
中, 日센카쿠제도 임무수행 해경선 진먼다오 해상 급파해 압박
5월 20일 총통 취임 앞둔 라이칭더 당선인에겐 정치적 시험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사이의 대만해협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만의 최전방 섬 진먼다오(金門島) 인근 해역에서 대만의 불법조업 단속을 피하려다 목숨을 잃은 중국 어민들을 둘러싸고 양안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오는 5월20일 취임을 앞둔 라이칭더(賴清德) 대만 총통 당선인의 중요한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최근 일본 센카쿠열도(중국명 釣魚島) 부근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2000t급 대형 해경선을 푸젠(福建)성 샤먼(厦門)과 마주보고 있는 대만 진먼다오 해역에 긴급 이동배치했다고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 등이 지난 27일 보도했다. 중국 해경국은 앞서 25일 진먼다오 해역에서 중국 해경선과 순시선이 순찰활동과 작전훈련을 펼치는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
진먼다오 부근 해역에 출현한 중국 대형 해경선은 기관포 등 중화기로 무장한 해경 2202과 해경 2203으로 확인됐다. 해경 2202와 2203은 퇴역한 중국 해군 2000t급 053HG형 미사일 호위함 화이난(淮南)과 안칭(安慶)을 개조한 것이다. 이들 대형 해경선은 강력한 화력을 갖춘 데다 헬리콥터 이착륙이 가능하다고 중국 군사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중국 어민 사망사건은 지난 14일 진먼다오 인근 해역에서 일어난 중국 어선 전복 사고에서 비롯됐다. 대만 해순서(海巡署·해경)에 따르면 진먼·마쭈(馬祖)·펑후(澎湖)지부 소속 CP-1051 대만 순찰보트가 이날 오후 1시45분쯤 진먼 푸궈둔(金門復國墩) 해역을 순찰하던 중 진먼현 베이딩다오(北碇島) 동쪽 2.03㎞(금지수역 안쪽 1.6㎞) 해역에서 중국 선박이 경계선을 넘어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대만 순찰보트가 단속하는 과정에서 해당 선박은 뒤집혔고 선원 4명이 바다에 빠졌다. 이중 2명은 무사히 구조했으나 바다에 빠지면서 의식을 잃은 2명은 구조된 뒤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중국 정부는 발끈했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주펑롄(朱鳳蓮) 대변인은 17일 "대륙(중국)은 대만동포에 대해 선의로 가득 차 있지만, 대만이 대륙 어민의 생명·재산·안전을 무시하는 행동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며 “관련 책임자를 엄벌에 처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면서 "대륙은 더 나아간 조치를 할 권리를 갖고 있다"며 "모든 부정적 결과는 대만이 부담한다"고 밝혀 후속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간위(甘羽) 중국 해경 대변인도 18일 소셜미디어(SNS)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를 통해 “푸젠성 해경국이 해상법 집행역량을 강화할 것”이라며 “관련 해역의 조업 질서를 수호함으로써 중국 어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대만해협에 긴장감이 팽팽한 것은 중국이 '어민 사망사건'을 빌미로 대만에 대해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한 친미·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민진당)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는 한편 오는 4일 개막하는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강공'을 펴고 있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에 따라 중국 해경국은 18일 샤먼과 진먼다오 사이 해역을 상시 순찰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19일 중국 해경은 대만 유람선에 올라타 항해계획서와 선박증서, 선원들 신분증을 요구하는 등 검문을 실시하기도 했다. 21일에는 중국 대형 해경선들이 대만 최전방인 마쭈다오 해역에 모습을 드러냈고, 26일 중국 해경선 5척에 이어 27일에도 중국 해경선 11척이 무더기로 진먼 금지·제한수역에 넘어온 것이 목격됐다.
사실 중국 어민들의 대만해역 불법조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만 정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대만 해경이 퇴거한 중국 어선은 모두 650여 척에 달한다. 사고가 발생한 진먼다오 동쪽 푸궈둔의 한 대만 어민은 대만 연합보(聯合報)에 “(중국 어선들이)경계를 넘어 조업하는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마치 제 집안을 드나들 듯이 들어와 해안에서 500m 안쪽에 그물을 풀어 조업할 정도”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때문에 대만은 그동안 진먼다오 일대를 포함해 자국 해역에 진입하는 많은 중국 어선을 단속하는 데 골머리를 앓아 왔다. 많은 중국인들이 포획을 금지한 물고기를 잡고 모래채취나 쓰레기 해양투기 등으로 생태계를 훼손하며, 대만의 통제 요구에도 따르지 않았다.
심지어는 일부 어부가 식칼, 가스통 등으로 대만 해경을 위협하는 일도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민이 숨지는 사고까지 일어난 것은 이례적이라고 홍콩 명보(明報)는 전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지난달 라이 민진당 후보의 차기 총통당선 이후 대만해협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는 시점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양안 갈등을 격화시킬 공산이 크다. 중국은 라이 당선인을 '위험한 분리주의자'라며 "대만 독립이라는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보내온 만큼 그의 총통 취임을 앞두고 대만을 겨냥한 공세를 강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중국 어민들이 사망함에 따라 중국이 국내여론을 의식해서라도 그간 양측이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어업금지 수역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 또 다른 양안 마찰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연합보는 사망사건이 양안 어민의 우발적 충돌로 이른바 ‘총을 닦으려다 오발이 발생할까’(擦槍走火)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강경한 반중국 성향인 라이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양안관계 경색이 우려되는 시점인 만큼 현재 양측이 이에 관한 소통 채널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갈등을 부채질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이 대만에 유감 표명을 넘어선 행동을 요구하면서 '더 나아간 조치'까지 시사함에 따라 라이 당선인의 5월 취임을 앞두고 중국이 추가적인 대만 압박수단을 꺼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이 설정한 금지·제한 수역을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또 다른 갈등의 불씨로 번질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 용어 설명
진먼다오는 대만 본섬과는 200km가량 떨어져 있으나 중국 푸젠성 주요 도시인 샤먼과는 지척의 거리인 불과 4km쯤 떨어져 있다. 대만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패퇴해 대만으로 물러날 때부터 이 섬을 둘러싼 치열한 교전을 벌였을 만큼 진먼다오는 양측 모두에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더욱이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은 1958년 이 섬을 향해 44일 동안 48만 발의 포탄을 퍼부으며 점령을 시도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 등이 개입해 중재가 이뤄졌지만 이후에도 산발적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