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선 감독 연출
수민(최성은 분), 사랑(하서윤 분), 태희(현우석 분)는 전직 아이돌 멤버들이다. 쉽게 말해 망했다. 수민과 사랑은 섹시 콘셉트로 그룹이 상승세를 탄 적도 있었으나 멤버의 죽음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태희는 그룹 해체 기사를 군대에서 봤다. 아이돌이라는 꿈 하나만 바라보며 청춘을 다 바쳤는데 정산 한 번 못 받은 처지다. 몸도 마음도 지친 그들은, 연습생과 아이돌 생활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학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수학여행은 쉽지 않다. 사랑이 가방을 버스에서 놓고 내린 것에 이어 밥을 먹다 자신을 보고 수군거린다고 착각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합의금으로 전 재산이자 여행경비 98만 원 중 94만 원을 내놨다. 4만 원은 밥값이다. 쉬겠다고 온 곳에서 시작부터 빈털터리가 됐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귤을 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고용주는 세 명의 청춘들이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다음 날도 나오라고 권유한다.
낮에는 귤을 따며 잡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밤이 되면 이들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에 몸을 뒤척인다. 태희는 빚 3000만 원과 2년이나 남은 계약 기간 때문에, 수민은 음식을 먹으면 게워내는 탓에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사랑은 약이 없으면 잠에 들지 못한다. 그래도 서로가 있음에 조금은 의지할 수 있다.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사랑의 가방을 찾으러 간 분실물 센터 직원 소윤(강채윤 분)이 이들의 팬이었다. 가방은 결국 찾지 못했지만 소윤은 이들에게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에 다른 가방이라도 가지라고 이것저것 챙겨줬다. 다음 날 우연히 만난 소윤은 이들을 숙소까지 태워주는가 하면 함께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
귤 농장 주인 상표(홍상표 분)는 귤을 따다 쓰러진 수민을 비롯해 사랑과 태희가 이곳에 온 이유를 듣고, 돈을 두 배로 줄테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고 더 놀라고 권유한다.
이 영화는 꿈의 잔인한 잔해 속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은 어느새 그들을 세상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밀어낸 굴레가 됐다. 이들이 겪는 좌절과 상실을 통해 '정상적인 삶'을 잃어버린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을 조명한다. 사회가 구축해 놓은 시스템 안에서 도태돼 인생이 끝났다고 절망하는 수민, 사랑, 태희는 너무 젊고 어리다.
이와 동시에 그들의 여행과 만남을 통해 일상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행복과 희망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합의금으로 여행경비를 잃고, 빚에 쫓기고, 죽은 멤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불면증, 섭식 장애로 괴로워하는 모습은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지만, 무너지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버티는 법을 배워나가는 모습에 집중한다.
역전극이나 낭만은 없다. 청춘들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빚과 계약 기간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수학여행이라는 '멈춤' 속에서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늘의 음영을 깊게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들이 '전직 아이돌'이라는 설정을 가졌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주류에서 벗어나 자기혐오와 좌절감을 맛보고 있는 청춘이라면 모두 해당사항이다. 추락해 쓰러졌다면 다시 땅을 짚고 일어서면 된다. 주어진 현실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는 수민, 사랑, 태희는 담담하게 이제 '힘을 낼 시간'이라고 말한다. 18일 개봉. 러닝타임 9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