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티켓 가격이 급등하면서 관객들은 그에 따른 ‘확실한 만족감’을 얻길 원한다. 그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들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직관적인 것이 ‘화려한 무대’다. 뮤지컬 무대에서 마술적 요소를 활용해 단순한 눈속임을 넘어 관객들에게 몰입형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2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알라딘’은 이런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 중 하나다. ‘알라딘’은 지니가 등장하는 장면이나 갑자기 사라지는 장면, 동굴이 순식간에 황금색으로 물드는 장면 등은 물론, 등장인물의 의상이 눈 깜짝할 사이 바뀌고, 인물이 사라지는 등 수시로 관객의 눈을 현혹한다.
유명 일루셔니스트이자 마술의 역사에 관한 책을 지은 저자이기도 한 짐 스탠메이어(Jim Steinmeyer)를 일루전 디자인 크리에이터로 영입해 마법 같은 장면들을 현실처럼 구현해낸 것이다. ‘알라딘’은 이미 전 세계 4대륙, 11개 프로덕션에서 공연하면서 약 2000만명의 관객을 모은 브로드웨이 히트작인데, 작품의 마술적 요소는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장 큰 흥행 요소로 꼽힌다.
8일 개막한 뮤지컬 ‘사랑의 하츄핑’ 역시 TV 만화 ‘캐치 티니핑’의 극장판 영화를 무대로 옮긴 만큼 영화 속의 드라마틱한 효과들을 무대에서 구현하기 위해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이 총연출을 맡았다. 극장 개봉 당시 누적 관객 123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마술 노하우를 활용해 공연의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것이 제작사의 설명이다.
뮤지컬에 마술이 결합해 관객과 만난 상황은 최근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은결은 2013년 뮤지컬 ‘카르멘’에서도 매직 디렉터로 참여했다. 프랑스의 유명 오페라 ‘카르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주인공 카르멘이 서커스 단원으로 등장하면서 마술적인 요소가 극에 녹아들었는데 이은결은 이 작품에서 마술을 활용해 상자 안에 들어간 사람이 사라진다거나, 천막을 없애고 나면 카르멘이 등장하는 등 판타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도왔다.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고스트’(2020)도 일루션 디자이너 폴 키이브가 참여해 주인공 샘이 벽을 통과하는 장면이나 공중에 떠다니는 물건 등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역할 등을 했다. 폴 키이브는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등 유명 뮤지컬의 마술 효과를 담당했던 일루셔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해 더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뮤지컬 속 마술'은 더욱 절실해진 요소가 될 듯 싶다. 실제 업계에선 최근 판타지, SF 뮤지컬이 증가함에 따라 마술과 뮤지컬의 협업이 더 활발해질 거라는 의견이다.
한 관계자는 “최근 영화와 소설 등 원작의 뮤지컬화가 활발해지고 있고 특히 SF, 판타지 장르의 뮤지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마술은 뮤지컬의 예술적 표현을 확장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서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운 무대 연출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또 “관객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을 넘어 뮤지컬 무대에서 몰입형 경험을 원한다. 마술적 요소는 이런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극적인 몰입도는 높이는데도 효과적이다. 화려할수록 시각적으로 자극이 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특수효과나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데에는 높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티켓 가격 상승의 요인으로 이어져 관객 접근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뿐만 아니라 뭐든지 적절하고 균형있는 활용이 중요하다. 화려함에만 매몰돼 마술적 요소에 지나치게 집중할 경우 스토리 전달력이 약해지고 극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