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외국인력이 저임금·비정규직 문제 고착 시켜"
조선사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일손 부족 없어야"
국내 조선업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인력난이 외국인 유입으로 차츰 해소되고 있는 가운데, 조선업종 노동조합이 반발하고 나서며 노사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노조는 정부가 추진한 E-7(숙련기능인력) 비자 쿼터 확대 등 외국인 유입 정책이 조선업의 저임금 및 비정규직 문제를 고착시킨다며 반대하지만, 업계는 일감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인력 수급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 및 법무부는 올해 숙련기능인력 비자 취득 가능 인원을 지난해와 같은 연간 3만5000명으로 정했다.
지난해 경영·수주 실적 모두 견조한 기록을 달성한 국내 조선업계가 외국 인력 유입이 계속 필요하다고 판단, 정부에 건의하며 이같은 비자 쿼터가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조선사의 요청이 있을 경우 법무부와 협의해 E-7 비자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조선사 노조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정책이 조선업 전체의 저임금 및 비정규직 문제를 고착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전국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주장을 피력했다.
노조는 "정부는 위험하고 저임금인 불안정한 조선업 일자리를 이주 노동자로 대체하고 있다"며 "이주 노동자들로 일자리를 메우는 식은 비정규직과 임시 단기 일자리만 양산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조선소 현장에 신규 근로자들이 발을 들이지 않는 건 안정적이지 못한 비정규 일자리, 낮은 임금구조, 위험한 작업 현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업 내 다단계 하청구조 개선, 정규직 채용 확대를 통한 숙련노동자 육성 정책 수립, 조선업 근로자들이 참여하는 논의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외국 인력 충원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만큼 노조의 주장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 조선사 한 관계자는 "노조의 의견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라면서 "외국인 유입을 줄인다고 임금구조 같은 게 단번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일손 부족 현상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 역시 "외국인력이 온다고 해서 노조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고 오히려 손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일감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하면 여전히 사람이 부족한 게 맞기 때문에 외국인의 투입은 지속돼야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조선사들이 해외 인력 유입에 절박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초호황기를 맞은 국내 조선업계에 '인력난'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현재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량은 2~3년치의 일감을 채운 '포화'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기준 46조원의 수주량을 기록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도 지난해 기준 각각 31조원, 27조원으로 수주 잔고를 채운 상황이다.
조선 분야 한 연구원은 "수치가 증명하듯 국내 조선업계는 한창 일을 해야할 때"라면서 "최근에는 외국인 인력이 단기적으로 급한 불을 끄는 것을 넘어서 장기적으로도 긍정적일거라고 판단되는 만큼 업체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조선업 호황을 고려하면 올해에도 외국인 근로자 충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국내 대형 조선소들은 각각 1000명이 넘는 외국인 근로자를 새로 채용했다.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지난해 12월 기준, 직전 해 약 3500명이었던 외국인 근로자가 4500명으로 늘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거제사업장에서도 1000명이 넘는 외국인이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