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주52시간 예외는 쏙 빼놓고
반도체특별법 패스트트랙 지정 추진
與 반도체 현장 애로사항 들으며 반격
"野, 민노총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
더불어민주당이 주52시간 근로 예외 조항이 빠진 반도체특별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리겠다고 선언하자 국민의힘이 긴급 대응에 나섰다. 반도체 산업 현장을 직접 찾아 주52시간제 예외를 호소하는 업계 종사자들의 스피커를 자처한 것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8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미코' 동탄 제3사업장을 찾아 주52시간제 관련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권 위원장은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주52시간제 예외를 두고 R&D(연구개발)가 단기로 필요할 때 집중해서 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과 관련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반도체 분야에서 주52시간제가 그렇게 필요한 게 아니라고 했는데, 현장을 보니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의 이번 현장 방문은 민주당이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뺀 반도체특별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힌 이튿날 이뤄졌다. 주52시간제 완화를 호소하는 현장 목소리를 키워 민주당의 현 기조를 흔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에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처음으로 대표발의했다. 다만 이 법안엔 R&D 분야 주52시간 근로 예외 적용에 대한 내용이 없다. 주52시간제 예외가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건 지난해 11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반도체특별법에 근로 예외 조항이 담기면서다.
민주당은 처음엔 주52시간 예외 적용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3일 열린 토론회에서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되냐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라고 말해 긍정적으로 선회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2주만에 입장을 또 바꿨다. 이에 지난달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중위) 법안소위에서 반도체특별법 처리가 무산됐다. 이 대표는 이후 페이스북에 "조건(52시간 예외 조항) 없이 반도체특별법부터 우선 처리하자"고 입장을 밝혔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지난 20일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주52시간 근로 예외를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야당은 노동계 반발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은 애초에 주52시간이 쟁점이 아니었다며 일단 세제·재정 지원이 핵심인 특별법을 통과시킨 뒤 근로시간 유연화는 추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주52시간 예외가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특별법 처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근로시간 제한이 실제 역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실제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고성능·저전력 AI 반도체, 전력 반도체, 차세대 고성능 센싱 기술 모두 중국이 한국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산중위에서 반도체특별법이 계류되자 지난달 27일 패스트트랙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국민의힘이 제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법정심사기간 180일이 지나면 지체 없이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이 없는 특별법이 결국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재명 대표가 한때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을 수용하면서 '산토끼' 중도보수로의 외연 확장을 시도하려 했으나,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결국 '집토끼' 노동계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반대 입장을 관철할 것이란 관측이다.
장성호 정치평론가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중도보수'라는 발언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대선을 앞두고 민노총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과 타협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본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