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파일 생성부터 제출까지 전 과정 관여
음성 조작하지 않았다는 취지 일관되게 진술
"2심 재판부, 필요한 심리 다하지 않은 잘못"
대법원은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녹음 파일의 원본이 없다고 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판결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엄상필)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기 및 무고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A·B씨는 피해자 C씨에게 주식 투자를 한다는 등의 명목으로 수회에 걸쳐 2억7000만원의 현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B씨는 C씨에게 3000만원을 빌려주고 돌려받았는 데도 못 받았다며 C씨를 사기죄로 고소해 무고 혐의도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C씨는 수사기관에 A·B씨가 자신에게 주식 투자를 권유해 돈을 건넨 상황 등이 담긴 녹음 파일을 제출했다. 그런데 이 파일은 원본이 아닌 사본이었다. C씨가 휴대전화에 녹음한 파일을 컴퓨터와 외장 하드디스크에 옮긴 뒤 원본을 지운 것이다.
1심 재판부는 C씨가 제출한 녹음파일을 토대로 두 사람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B씨에겐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C씨의 진술과 녹음파일 내용이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A·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C씨가 제출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C씨 휴대전화에서 삭제된 파일 일부를 복원했고 복원된 파일과 사본의 해시값(파일의 고유한 표식)과 녹음일시가 같다는 점을 입증했다.
2심 재판부는 "(해시값이 일치하는) 녹음파일 1개를 제외하고는 조작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비교 파일(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본 그대로 복사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없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녹음파일 일부는 원본과의 동일성이 증명됐다며 2심 재판부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녹음파일은 이 사건 유무죄 판단을 좌우할 증거인데도 2심 재판부는 원본파일이 없다는 이유만을 들어 원본과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피해자는 녹음파일 생성부터 제출에 이르는 전 과정에 관여했는데 거기에 녹음된 음성이 피고인들의 것으로 음성을 조작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반면 피고인들은 녹음 파일이 자신들의 음성인지, 조작이 됐는지 등에 대해 막연히 부인했을 뿐 어떤 내용이 편집·조작됐는지 구체적으로 변소하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