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항소심 무죄' 선고 후 초강수
헌재, '정치적 판단' 의심받을 수밖에
박찬대 "헌재, 헌법 수호 책무 방기"
우원식도 "尹선고 조속히 내려 달라"
더불어민주당이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 지정을 고의로 늦추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초 탄핵선고 시점에 대한 전망이 이달 초에서 내달로 정해질 가능성이 거론되자 헌재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의구심이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사건 항소심 무죄로 기세가 오른 민주당이 조기대선 정국으로의 전환을 노린 헌재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7일 서울 광화문 앞 천막당사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헌재가 헌법 수호라는 중대한 책무를 방기하는 사이 온갖 흉흉한 소문과 억측이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다"며 "선고가 늦어지면 늦어지는 이유라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헌재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회의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이날 광화문 천막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가 윤석열 파면 선고를 지연하는 것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며 "헌재는 신속한 파면 선고를 통해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헌재를 향한 민주당의 압박은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당초 전망보다 한 달 가까이 지연되자 헌재의 '예상 외 판결'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애초 윤 대통령 선고가 가장 시급하다는 뜻을 밝힌 헌재가 이 대표 항소심 선고 이후까지도 판결을 미루고 있다"며 "이는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들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려는 민주당 내에서도 공유되는 분위기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 지정이 늦어지는 데 대해 "헌재의 좌고우면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졸속 선고는 안 된다' '이재명 대표 항소심 이후에 선고해야 한다'더니 이제는 4월 선고설까지 나오고 있다"며 "헌재가 정말 고의로 내란수괴 파면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인가"라고 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브리핑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에서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나'라는 질문에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그런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며 "변론을 종결한 지 한 달이 넘어갔고, 걱정하고 의구심을 갖는 국민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민주당이 대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전했다.
헌재의 탄핵 판결 지연에 우원식 국회의장도 목소리를 보탰다. 우 의장은 국회 본관 의장실에서 담화문 발표를 통해 "헌재의 독립성과 신뢰성이 대한민국 헌정 수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간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면서도 "그러나 탄핵 선고 지연이 초래하는 상황이 기본 가치마저 흔들고 있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국론이 분열되고 여러 현안에 국가 대응 능력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이 상황이 언제 끝나냐, 도저히 불안해 못 살겠다'고 말한다"며 "헌법재판관들이 최대한 신속하게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내려달라. 선고가 지연될수록 우리 사회가 감당할 혼란이 커질 것이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이 치르게 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헌재의 윤 대통령 파면 촉구를 위한 '24시간 철야농성' 카드도 꺼내 들었다. 아울러 헌재 앞 기자회견과 릴레이 시위도 이어갈 방침이다. 시한은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퇴임일인 내달 18일이다. 황정아 대변인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천막당사를 24시간 체제로 전환하고 국회의원 전원이 광화문 철야 농성에 돌입하는 등 파면 촉구 수위를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한 압박도 이어갔다. 박 원내대표는 "한 대행이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마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는 건 모순"이라며 "헌재가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한 지 26일째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대행이 즉시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을 경우 파면사유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우 의장도 "(한 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 아닌가. 한 대행이 스스로 헌법 위반의 국기문란 상태를 끌고 가면서 국민에게 어떤 협력을 구할 수 있겠느냐"라며 "불확실성을 최대한 빠르게 해소하고 훼손된 헌정질서를 바로잡는 것만이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전날 이 대표에 대한 선거법 위반 항소심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당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고 한 발언, 함께 골프를 친 사진이 조작됐다는 발언, 국토교통부의 협박으로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해줬다는 발언을 모두 허위사실공표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이 대표는 차기 대권행보 가운데 중대 걸림돌이 사실상 모두 제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제 이 대표 앞에 꽃길만 깔렸다고 봐야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세상이 어떻게 꽃길만 있겠나"라며 "걸어가다 보면 꽃길도 있고, 황톳길도 있고, 자갈밭도 있고,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