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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도, 이동도, 사진도 OK…해프닝을 소비하는 ‘연희예술극장’ [공간을 기억하다]


입력 2025.03.28 16:22 수정 2025.03.28 16:22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다시, 소극장으로⑳] 서울 서대문구 연희예술극장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연희동 초입에 자리한, 살롱형 소극장 ‘연희예술극장’


한때는 부촌으로 인식됐던 연희동은 현재 예술가들과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문화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작은 골목길을 따라 카페와 문화 공간들이 줄지어 생겨나면서다. 특히 연희동 초입에 자리한 연희예술극장은 2018년 이곳에 자리를 잡고, 지역적 특색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의 기반이 되어 준 공간이다.


연희예술극장은 연극을 비롯해 무용, 콘서트, 전시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담는 복합예술공간을 표방한다. 자신들을 흔히 대학로 연극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라고 느꼈던 신재철 대표를 필두로, 2018년 대학로를 벗어나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예술을 위한 공간을 연희동에 마련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형태가 아닌, 살롱형 소극장 까페떼아뜨르 형태의 극장이다.


100평 규모에 5M의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극장은 ‘경계’가 분명치 않다. 극장 전체가 전시장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카페가 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무대가 됐다가 객석이 되기도 한다. 공간의 활용이 자유로운만큼 다양한 문화 활동 가능성이 열려있는 공간이고, 때문에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신 대표는 ‘연극=대학로’라는 인식을 뒤집으면서 새로운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갔다.


“접근성에 대한 어려움이 당연히 있겠지만, 오히려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희가 원하는 창작물을 향유하는 관객은 대학로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인디 음악을 ‘찾아 듣는’ 것처럼 저희의 창작물도 관객들이 원할 때 ‘찾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리적인 것은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연극 관람 행위 넘어 하나의 ‘해프닝’ 소비하는 문화로”


신대철 대표가 이끄는 극단 이방인은 개관 당시 첫 공연으로 ‘춘향전’을 올리면서부터 일찌감치 이곳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극에 담아내 보여줬다. 홍대 패션디자인과 학생들과 협업해 개성 강한 현대적 의상을 만들고, 국악과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시도가 돋보였다. 무대 연출도 객석을 없애고 전 좌석 스탠딩으로 구성하면서 관객들이 전시장에 온 것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배우들의 행위를 지켜보고, 참여하도록 했다.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여타 극장과 달리 오히려 이를 권하기도 한다.


“여러 장르의 전문성 있는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연극을 소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등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관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장르를 고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하도록 함으로써 단순히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해프닝’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저희 공연장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이기도 하고요.”


공간의 목적과 방향성이 뚜렷한 만큼 이곳을 채우는 작품들에도 특유의 ‘색깔’이 존재할 거라는 인식이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심지어 대관을 함에 있어서도 특별한 ‘기준’을 두지 않는다. 다만 ‘3OK 문화운동’(을 지향하는 이곳의 쓰임에 맞게 운용하는 경우 대관료 할인을 진행하는 식이다.


“다양성과 무작위성은 한끗 차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물론 동의하지만 공간과의 적합성을 따져서 대관을 받기 시작하면 그것 역시 또 하나의 ‘검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의 정체성을 흔드는 정치 행사 등만 아니라면 어떠한 예술이든 저희의 취향이나 틀에 맞추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연희예술극장의 기준입니다. 실험공간을 표방하고 있는 한, 무모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예술을 포용하기 위해선 오히려 극단 이방인의 색깔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서 극장 내부도 화이트박스로 바뀌었죠.”


‘신선함’을 추구하는 공연의 특색에 맞게, 이들이 지원하거나 기획하는 프로젝트도 대부분 신진예술가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 ‘모자이크 페스티벌’ ‘까마귀 클럽’ 등이 대표적이다.


“위태로움을 즐기는 건 아니에요. 다만 예술은 선을 넘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나 무모함을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진 예술단체나 아티스트와 매니징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이미 부각된 분들은 설 무대가 많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무대도 필요하잖아요. 분명 그들 중에서도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설 수 있는 곳이 매우 한정된 것이 사실이니까요.”


다양성과 신선함을 모토로 한 연희예술극장에는 연극 연출가부터 무대 디자이너, 포스터 디자이너, 음악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하고 있다.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소통하면서 오는 시너지는 이 극장이 운영되도록 하는 원동력이자,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긍정적 힘이다.


“감사하게도 초창기 멤버들이 같은 예술적 비전을 가지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어요. 이젠 이 공간이 우리가 원하는 가치로 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더 나아가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혹자는 흉을 볼 수 있겠지만 저는 ‘부자인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야 극단도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적 가치만으로 집단이 움직이긴 힘든 시대잖아요. 수익성을 가질 수 있는 극단으로 가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물론 ‘수익성’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다. 공간적, 기술적으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고 공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도 시작했다.


“공연은 결국 소멸되잖아요. 하지만 그 가치가 소멸하진 않죠. 그래서 그 가치를 기억할 수 있는 아카이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희예술극장을, 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을 기억할 수 있는 포스터 아카이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성이 쌓인다면 브랜딩 가치도 많은 분들이 알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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