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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타이밍을 놓친 소통의 아쉬움 [기자수첩-산업]


입력 2025.04.11 07:00 수정 2025.04.11 07:00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3조6천억 초대형 증자, 일주일 만에 구조 변경

승계 의혹에 주주 반발까지…뒤늦은 방향 전환

“뼈저리게 반성 중”…뒤늦은 해명에 쏠린 시선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사장이 지난 8일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에서 열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래 비전 설명회'에서 중장기 투자 계획 및 최근 유상증자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구조가 전격 변경됐다.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3조60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은 불과 일주일 만에 2조3000억원 주주배정과 1조3000억원 제3자 배정의 혼합 구조로 바뀌었다. 제3자 배정 대상은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다.


예고 없이 이뤄진 유상증자 축소·변경은 경영권 승계 논란과 소액주주 반발을 의식한 대응이었다. 주주들은 초대형 증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고 한화에너지 자금 투입이 지배력 강화를 위한 수단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금융당국이 증권신고서를 반려하자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당황한 한화는 서둘러 방향을 틀었지만 반응은 엇갈렸다. 시장이 원하는 건 숫자가 아니라 이유였다. 유상증자 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주주들은 자금 사용처와 판단 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핵심 정보가 빠진 일방적 발표가 되레 투자자들들의 불신을 키웠다. 시장은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주가는 불안정한 흐름을 보였다.


며칠 뒤 열린 설명회에서야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사장이 나서 사과와 해명을 내놨다. 안 대표는 “방산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논란을 통해 뼈저리게 반성했다”며 “주주가치를 최우선에 두겠다”고 말했다. 중장기 투자 계획과 함께 이례적인 실적 가이던스도 제시됐으나 이미 한 차례 흔들린 신뢰가 곧바로 회복되긴 어려웠다.


한화는 과거에도 유상증자를 통해 대형 인수 자금을 조달해왔다. 앞서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 당시에도 증자를 단행했으나 당시에는 자금 목적과 용처가 비교적 분명하게 제시됐다. 반면 이번 사안은 지배구조 문제까지 얽혀 있었고 해명이 늦어지면서 시장의 의구심을 더욱 키웠다.


늦게나마 발표된 변경안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소액주주의 참여 부담을 낮추고 제3자 배정에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은 점은 주주 친화적 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적 전망과 투자 계획을 구체화한 후속 조치도 투명성 강화라는 분석이 나왔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소통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기업이 시장과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본 조달의 정당성뿐 아니라 그 과정을 설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메시지는 더 신속하고 정직해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어떤 설명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위기의 순간에 진짜 시험대에 오르는 건 실적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신뢰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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