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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끝내 현실화한 평화당 '돼지콘의 저주'


입력 2019.07.29 02:00 수정 2019.08.01 21:20        정도원 기자

지지자들은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를 기대했는데

鄭 "정의당보다 정의롭게"…정체성 설정의 오류

지지자들은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를 기대했는데
鄭 "정의당보다 정의롭게"…정체성 설정의 오류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지난해 8월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직후 당 깃발을 건네받아 흔들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해 8월말, 민주평화당이 전당대회를 치르고 강원 고성의 국회연수원으로 국회의원 연찬회를 떠났을 때의 일이다.

연찬회 도중 휴식시간이 되자, 의원과 기자들이 모여 있는 휴게실에 당직자가 들어와 아이스크림을 나눠줬다. 부라보콘을 집어들었던 평화당 한 초선 의원이 맞은편 모언론사 K기자가 집어든 돼지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돼지바가 콘도 나왔느냐"며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돼지콘을 다 먹고난 뒤, 이 의원은 "돼지바는 겉을 감싼 초코크런치의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게 베어물면서 안의 딸기잼의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게 정체성"이라며 "돼지콘은 콘 윗부분에만 살짝 초코크런치가 있어, 돼지바로서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러더니 이 의원은 멀찍이 앉아있던 정동영 대표를 바라보면서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혼잣말처럼 토로했다.

평화당 '정동영 체제'가 출범한지 만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지표로 보면 '돼지콘의 저주'가 들어맞았다고밖에 달리 말할 길이 없다.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조사한 정당 지지율에 따르면 전당대회 직전인 지난해 7월 23~24일 설문에서 평화당 지지율은 3.5%였다. 전당대회 직후인 8월 15일 조사에서 4.0%로 '반짝 상승'한 지지율은 지난 한 해 동안 최고 4.2%(올해 4월 22~23일)와 최저 2.2%(지난해 11월 26~27일) 사이를 오르내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柳 "민주~정의 사이에는 엉덩이 하나 못 편다"
'돼지콘의 저주' 극복하려면 DY 성찰·결단해야


이같은 '박스권 지지율'은 정 대표가 스스로 공언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정 대표는 지난해 7월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면 목표는 당 지지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는 것"이라며 "선명한 노선으로 매진하면 평화당 지지율은 15%를 향해갈 수 있다"고 장담했다.

정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직후 함께 선출된 최고위원들과 의견을 조율할 틈도 없이 "내일 아침 첫 최고위는 한진중공업에서 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로 올라온 뒤에는 대한문 앞 쌍용차 노조 분향소를 찾아가겠다고도 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다. 정치는 책임이다. '선명한 노선'으로 충분히 해봤는데도 결실이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정의당보다 더 정의롭게 가는 게 평화당의 목표"라던 정 대표의 정체성 설정이 오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애초에 국민의당 지지자들이 바랐던 정체성은 왼쪽의 더불어민주당과 오른쪽의 자유한국당 사이의 어딘가였는데, 국민의당에서 갈라져나온 평화당이 왼쪽의 민주당과 더 왼쪽의 정의당 사이의 어딘가에서 정체성을 찾은 것부터가 문제다.

많은 국민들이 민주당과 정의당을 '초록이 동색'처럼 바라보고 있는데, 풀색과 녹색 사이에서 '색깔'을 내겠다는 것도 문제였다. 유성엽 원내대표가 "정동영 대표가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는 협소하고 비좁다"며 "더 넓은 광야로 나가야 되지 않느냐"고 일갈한 것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정동영 체제'를 지켜본 국민들은 돼지콘에서 돼지바의 정체성을 기대했다가 맛보는 당혹스러움과 비슷한 감정을 충분히 느꼈다. 정체성 설정 오류로부터 비롯된 사분오열·지리멸렬을 타개하고 '돼지콘의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 정 대표의 성찰과 결단을 기대해본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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