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銀 통해 코로나19로 피해 입은 자영업자 이자 지원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자영업 대출 금리…은행 부담도 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여파로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을 위해 은행 대출 이자율을 낮추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미 개인사업자 대출 금리가 오를 대로 오른 상황임에도 현실화 시기를 다음 달로 잡으면서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가뜩이나 불어난 자영업 대출 탓에 고민이 커진 은행들의 어깨도 한층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정부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오는 4월 초부터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현재의 절반 수준인 1.5%까지 금리를 낮춘 이차보전 대출을 공급하기 위해 시중은행들과 협의에 들어갔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이차보전 대출을 총 3조5000억원 규모로 연말까지 9개월 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차주 당 3000만원 한도로 1.5%까지 금리를 낮춘 대출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다.
문제는 그 시점이다. 가뜩이나 대출 이자 부담이 가중되던 와중 코로나19 역풍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린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당장 지원책이 실행돼도 극복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들이 직전 3개월 간 취급한 개인사업자 운전자금 대출 금리는 평균 3.60%로 한 달 전(3.55%)보다 0.05%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해당 은행들의 자영업자 대출 평균 이자율은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게 됐다.
은행별로 봐도 모든 곳들의 개인사업자 대출 이자율이 일제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먼저 우리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이자율이 최근 한 달 동안 3.68%에서 3.77%로 0.09%포인트 오르며 가장 높았다. 이어 신한은행 역시 3.64%에서 3.69%로, 국민은행은 3.58%에서 3.62%로 각각 0.05%포인트와 0.04%포인트씩 개인사업자 대출 금리가 상승했다. 이밖에 하나은행도 3.50%에서 0.03%포인트 오른 3.53%, 농협은행은 3.33%에서 0.06%포인트 상승한 3.39%의 자영업자 대출 이자율을 나타냈다.
더불어 은행들이 정부의 이차보전 대출 출시에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지도 미지수다. 감면하는 이자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지원해 주기로 했지만, 은행의 부담도 결코 작지 않아서다. 정부는 은행이 소상공인들을 상대로 낮춰 준 이자 비용 지원 실적 중 80%를 재정에서 지원하기로 하고, 나머지 20% 만큼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소화하도록 할 계획이다.
안 그래도 은행들은 자영업자 대출의 가파른 증가세에 부담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들이 개인사업자들에 대한 대출 금리를 높여 온 것도 자영업자들의 가파른 대출 증가 흐름이 계속되면서 여신 관리의 필요성이 커지자, 금리를 올려 확장세를 제어해 보겠다는 계산이었다.
올해 들어 주요 은행들의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 속도는 가계 대출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 달 말 5대 은행들이 보유한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총 241조9314억원으로 지난해 말(239조4193억원)보다 1.0%(2조5121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조사 대상 은행들의 가계 대출이 610조7562억원에서 613조3080억원으로 0.4%(2조5518억원)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0.6%포인트 높은 증가율이다.
동시에 빚을 갚기 어려워하는 개인사업자들은 점점 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국내 은행들이 개인사업자들에게 내준 대출 중 한 달 이상 상환이 밀린 금액은 지난해 3분기 말 1조1282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383억원) 대비 8.7%(899억)나 늘었다. 이에 은행들이 떠안게 된 개인사업자 관련 고정이하여신도 같은 기간 1조1485억원에서 1조2065억원으로 5.1%(580억원) 증가했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3개월 넘게 연체된 금액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통상 부실채권을 구분하는 잣대가 된다.
설상가상 몰아닥친 코로나19 사태는 자영업자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면서 내수 경기에 의존하는 개인사업자들은 하나 둘 개점휴업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소비 심리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9로 한 달 만에 7.3포인트 급락했다. CCSI는 소비자들이 경기를 어떻게 체감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 수치가 100을 밑돌면 장기평균(2003~2018년)보다 소비자심리가 부정적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내에서 확진자 수가 급증하기 이전에 조사된 결과여서 코로나19가 소비심리에 가한 타격은 앞으로 더 확연히 드러날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가 국가적 위기인 만큼, 정부의 이차보전 대출 출시 방안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이에 따라 은행도 상당한 이자 비용을 짊어지게 되는 점은 분명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개인사업자 대출을 둘러싼 리스크가 커지면서 은행들로서는 위험 억제 차원에서 여신 관리 강도를 높여야 하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이로 인해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될 경우 결국 그 부메랑이 은행을 향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수준에서의 속도 조절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