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10만달러' 美 퇴직연금 중도인출 전격 허용
가계 유동성 대안…국내서도 "검토 필요" 목소리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퇴직연금의 중도인출을 허용하기로 한 것을 두고 국내 금융권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염병 감염 시 퇴직연금의 중도인출이나 이를 담보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규정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긴급자금 수요가 불어나면서 이를 예외적으로 완화해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 구제 및 경제부양법을 통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개인이 자신의 퇴직연금에서 최대 10만달러까지 벌금 없이 긴급인출하는 것을 허용했다.
해당 법안은 코로나19로 인해 긴급자금 수요가 급증하자, 가계의 주요 자산인 퇴직연금의 유동성을 제고해 개인의 긴급 자금 확보를 가능케 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미국 퇴직연금제도는 퇴직 전 적립단계에서 다양한 인출 수단을 갖추고 있지만, 노후 소득을 위한 적립금 보호를 위해 중도인출이나 긴급인출, 대출금 등의 조기인출에는 고용주의 허가와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 왔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올해 중 본인, 배우자 또는 부양가족이 코로나19로 진단받거나 코로나19로 일시해고, 해고, 근무시간 단축 또는 작업 불능 상태에 빠진 경우 퇴직연금 긴급인출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퇴직연금 담보대출은 기존 한도의 2배까지 한시적으로 증액되며, 올해가 상환기간에서 제외돼 최대 6년 간 상환이 가능케 했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별도의 긴급인출 제도가 없는 대신, 고용주의 허가나 벌금 없이 다양한 사유에 의해 중도인출과 담보대출이 가능한 특징을 갖고 있다. 다만, 전염병 감염 시 중도인출이나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규정은 없다. 현 퇴직급여 보장법상 조기인출은 중도인출·중간정산·담보대출로 한정되며, 긴급인출에 대해서는 정하고 있는 바 없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권에서도 미국과 같은 퇴직연금 활용 방안이 코로나19에 따른 가계 경제 어려움에 긴급 처방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불어난 퇴직금 규모를 감안하면, 이를 통해 가계에 공급할 수 있는 유동성이 상당할 것이란 평가다.
앞선 행보에 나선 미국의 경우 지난해 3월 말 기준 퇴직연금자산은 29조1000만달러로, 가계 금융자산의 33%에 달한다. 국내 퇴직연금은 2005년 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지난해 말 적립금이 221조2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 적립금(737조7000억원)의 30.0% 수준으로 가입자당 퇴직연금 적립금만 3529만원 수준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당 적립액이 가계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9.7%, 2018년 9.8%에 이어 지난해 10.0%까지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진억 보험연구원 수석담당역은 "코로나19로 인해 긴급자금이 필요한 퇴직연금 가입자에 대해 우선적으로 담보대출을 활용하거나 예외적으로 중도인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현 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상 고용노동부장관의 고시 사항으로 돼 있는 '기타 천재지변 등'에 대한 고시를 통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감염을 중도인출과 담보대출 대상으로 편입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노후자산 감소 방지를 위해 중도인출의 경우에는 금액한도, 담보대출의 경우에는 상환기간을 설정함으로써 위기 극복 이후 퇴직연금 자산의 재적립을 유도할 수 있다"며 "중도인출 시 불가피한 경우 이외에는 벌금을 부과하고 긴급인출은 엄격한 기준과 고용주의 허가 등을 통해 제한함으로써 가계의 노후자산 감소를 억제하는 미국과 같이, 중장기적으로는 노후소득 적립 강화를 위해 퇴직연금 인출제도를 보다 엄격하게 만드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