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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백스테이지] 128년 전 살인사건, 왜 예술적 영감이 될까


입력 2020.05.29 15:59 수정 2020.05.29 16:00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뮤지컬 '리지', 진실 알 수 없는 영구 미제사건

억압받는 여성, 시대 초월한 공감대

뮤지컬 '리지' 공연 사진. ⓒ 쇼노트

'리지 보든이 도끼를 들었네. 엄마를 40번 내리쳤다네…'


미국의 어린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며 흥엉거리던 노래다. 섬뜩한 가사의 '리지 보든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리지 보든 살인사건'은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 폴 리버에서 발생했다. 보든 일가의 부부가 도끼로 잔혹하게 살해된 것. 특히 사건의 범인으로 보든 가문의 둘째 딸 리지 보든이 지목되면서 이 사건은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놨다.


하지만 리지 보든은 무혐의로 풀려놨다. 모든 정황 증거가 리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물적 증거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리지 보든을 범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건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 연극, 소설 등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역시 대부분의 작품에서 리지 보든을 범인으로 기정사실로 여긴다는 게 공통된 특징이다. 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은 왜 끊임없이 사람들을 잡아끌고,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우선 시대적 배경과 리지 보든이 갖는 미스터리한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90년대는 지금과 달리 당시는 여성이 가녀리고 나약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한 시절이었다. 그만큼 도끼로 부모를 내리쳐 죽인 살인마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연스레 '리지 보든은 왜 도끼를 들 수밖에 없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쏟아져나올 수 있었다. 실제로 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은 소설은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 연극과 뮤지컬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1975년 TV 영화 '리지 오브 레전드'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됐고, 2015년작 미국 드라마 '리지 보든 연대기' 또한 혹평 속에 막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2018년 제작한 영화 '리지'는 악명 높은 살인마의 새로운 시각, 섬세한 감성을 불어넣어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처한 상황 속 두려움을 실감 나게 재현함으로써 리지 보든이란 인물을 세심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뮤지컬 '리지' 공연 사진. ⓒ 쇼노트

뮤지컬 '리지'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된다. 리지는 잔혹한 살인마이기도 하지만, 권위적인 남성 권력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시종일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그 안에 담긴 분노는 강렬한 록 사운드와 함께 산발적으로 폭발한다. 영화 '리지'가 섬세한 감성의 리지 보든을 그렸다면, 뮤지컬은 더 묵직하고 강렬한 정서로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뮤지컬 '리지'는 섬세한 대본을 통해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리지 보든을 둘러싼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도 사람들이 이 사건을 끊임없이 주목하는 이유다. 리지 보든은 당시 경찰 조사를 받는 내내 진술이 오락가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몰래 자신의 드레스를 불에 태우는 모습이 목격됐고,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재산을 물려받게 됐다.


당시 종교계와 여권 운동가들은 "물적 증거 없이 가련한 여성을 살인자로 몰아가고 있다"며 무죄를 주장한 반면, 일각에선 "기독교도이면서 여성이면 살인자도 결백해지느냐는 반박하며 논란에 거셌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리지 보든이 무죄를 받은 건 다름 아닌 평소 앓고 있던 간질이 결정적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검사 측은 도끼에 의해 부서진 부모의 두개골을 증거로 제시했는데, 이를 본 리지 보든은 간질 증세로 쓰러지고 만다.


이는 배심원들의 동정여론을 일으킨 결정적 장면이었고, 결국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만큼 리지 보든을 향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은 뮤지컬 '리지'만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뮤지컬 '리지'는 6월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된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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