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감독 부실에 개편론 불거져…금융위‧금감원 분리 이후 최대 이슈
금융위 정책·감독 분리-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등 민감한 사안 도마위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금융권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부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시작으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등 잇따른 대형 금융사고의 원인으로 금융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 문제가 지적되면서 현행 체계를 뜯어 고치자는 것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감독체계 개편 논의의 핵심이 '금융위원회의 정책과 감독 기능 분리'와 '금융감독원의 독점적 감독·검사권 지위 분산'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현재 감독체계의 정점에 있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권한을 나눠서 실효성 있는 시스템으로 재정비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금융권에선 이를 '가야할 길'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국과 금융회사, 학계에서도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루아침에 터져 나온 개편론이 아니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2013년 동양사태(동양증권이 판매한 계열사 채권 손실) 2014년 카드사 고객 정보 유출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든 금융사고에 현행 감독체계가 금융소비자 보호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의문과 불신이 쌓일 대로 쌓인 상황이었다. 최근 불거진 사모펀드 사태는 누적된 개편론을 폭발 시킨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한 셈이다.
금융권은 특유의 연대의식과 엘리트주의가 강한 보수적 문화가 뿌리내린 곳이기 때문에 변화의 바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감독체계 개편은 역대 정부에서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야심차게 추진하다가 정권 말기엔 흐지부지되길 반복했다. 개편방법을 두고 기관 간 이해충돌로 논의의 속도를 내지 못해 결국 개편론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수순이 되풀이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개편 이슈가 나왔을 때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논의가 또 다시 좌초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형사고 못 막는 '2008년 체제' 뜯어고치자" 공감대
현행 금융당국 체제는 1998년 재정경제원에서 분리한 금융감독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통합감독 체계 권고에 따라 금융감독위원회가 출범했다. 이어 1999년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이 합쳐진 금융감독원이 등장했다. 금융정책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감독은 금감위와 금융감독원이 맡는 방식이었다.
이후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합친 현재 모습의 금융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동시에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자리도 분리했다. 금감원은 무자본 특수법인이면서도 감독·검사권을 행사하는 공적 업무를 맡은 반민반관(半民半官) 성격으로 자리잡았다. 금융검찰로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만, 금감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도 아니다. 자율성과 중립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공공기관 지정 논의를 피해왔다.
그간 금융감독체계는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땜질식 개편으로 이뤄져 왔는데, 정치권이나 관료들의 편의와 시각에 따라 조직을 확대하거나 금융발전을 옥죄는 '옥상옥 규제'를 만드는 수준이었다. 현재 금융권에선 "이번엔 제대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울리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단위로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진 금융사(史)를 거론하며 "2008년 체제에서 12년만에 대수술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거론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의 큰 줄기는 금융위의 정책·감독 기능을 어떻게 분리하느냐와 금융위와 금감원을 어떻게 합치느냐는 두 갈래 의견으로 갈린다. 최근 금융권 기류는 금융위를 분리·해체해야 한다는 쪽으로 힘이 실리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학자시절부터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창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인 2017년부터 금융위의 정책과 감독을, 금감원의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 기능을 각각 분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방안'에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기능 분리를 골자로 한 '금융관리와 감독체계 개편'이 포함돼 있다.
다시 떠오른 '금융위 분리론'…액셀과 브레이크 분리할까
금융위는 지난 10여년 간 자동차의 '액셀'(정책)과 '브레이크'(감독)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관리‧감독 부실이 발생하는 근본적 환경을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기에 감독을 집행하는 금감원과의 중층적 구조 해소에 실패하면서 엇박자와 파열음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금융회사 제재 권한과 수위를 두고 두 기관이 기싸움을 벌인 사례는 최근 10년 사이 한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금감원은 올해 초 조직개편을 하면서 금융소비자보호처 조직을 6개 부서에서 13개 부서로 규모를 늘리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본질은 금감원 내에 소속된 일부 부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학계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색내기 수준의 개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금감원 개편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체계가 '쌍봉형(Twin Picks)'이다. 금감원을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기구와 금융회사 영업행태 감독기구로 나눠 기능을 따로 맡겨야 한다는 내용이다. 금감원은 소비자보호 기구를 분리하려면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혼란을 가져온다며 반대 입장이다. 윤석헌 원장을 비롯한 정부여당도 '쌍봉형 금융감독 체계'를 선호하고 있다.
다만 금융위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감독기능만을 쌍봉형으로 분리할 경우 금융사의 영업과 경영전략에 부담이 가는 등 금융시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아울러 정치적 민감한 이슈가 불거지는 시기에 금융감독체계를 바꾸는 것 자체가 문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최근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실세 정치인 연루 의혹이 따라붙는 상황에서 자칫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감독당국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고, 정치권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선정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에 접어든 시점에서 감독시스템의 개편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금융감독체계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소프트웨어 개선 정도가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장우 부산대 금융대학원 교수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사회적 비용이 큰 하드시스템 개편보다는 소프트 시스템 수정보완으로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면서 '내부 조직분리 등의 변화'와 '금융윤리 전담팀 설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