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부담으로 기업 승계 힘들어져…기업가정신 약화
총수 밀려나면 사모펀드 먹잇감 전락…낮추거나 폐지해야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우리 기업들의 영속성을 위협하고 국가 경제의 미래마저 뒤흔들고 있다. 기업 승계를 죄악시하는 징벌적 상속세율은 기업가정신은 쇠퇴시키고,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미래 산업 변화를 지휘할 컨트롤 타워를 끌어내리는 원흉으로 지목된다. 현행 상속세율의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산업 구조와 기업의 사업 영역이 글로벌화 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러 기업들은 지배력을 행사하는 법인이나 개인이 속한 국가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다.
시장 규모를 무기로 글로벌 기업들을 압박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우리나라로서는 국내에 있는 기업들이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주요 기업 총수들을 만나 대규모 투자나 고용 계획을 내놓도록 하는 것도 그들이 ‘대한민국’의 일원이라는 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 정부에게도 이런 ‘믿는 구석’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경영권 승계를 죄악시 하며 징벌적인 상속세 부담을 지우는 제도 때문이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사실상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다. 상속세 최고세율만 따지면 50%로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2위지만, 여기에 기업 승계시 주식가치에 최대주주할증평가(20% 할증)를 적용하면 실질 최고세율은 60%에 달한다.
창업주에서 1세대씩 승계가 이뤄질 때마다 지분이 60%씩 희석된다면 세대가 이어질수록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가업 승계를 이룰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국내 기업들이 편법 증여와 관련해 자주 논란에 휘말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5월 ‘21대 국회 주요 입법·정책 현안’ 보고서에서 “21대 국회에서 명목 상속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이 탈세 및 편법 증여를 조장하고 가업 승계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징벌적 상속세를 통해 가업 승계를 단절하려면 그 이후에 벌어질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부의 대물림’을 혐오하는 논리에 밀려 기업의 영속성에 대한 논의는 한 발 물러서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잃으면 ‘국민 기업화’해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온다. 이는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론일 뿐이다. 이미 과도한 상속세로 인해 지배구조가 허약해진 국내 기업들은 기존 최대주주가 밀려날 경우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국민 주주’가 아닌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해외 투기자본이다.
투기자본은 단기적 수익만을 추구한다. 기업 지분을 확보한 뒤 단기적 조치로 주가를 부양시킨 뒤 매각하거나, 알짜 자산을 매각해 배당 수익을 빼먹고 ‘먹튀’를 하는 방식이다.
지난 2003년 소버린이 SK(주) 지분을 매입하고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주가를 끌어올린 뒤 2년 뒤 되팔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투자액의 6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거둔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대주주가 밀려난 대기업집단이 뿔뿔이 흩어져 이리 저리 팔려 다니다 소멸하거나 외국계 기업의 자회사로 전락한 사례는 과거 대우그룹의 흥망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반추할 수 있다.
국민연금 등을 통한 기업 지배도 위험한 발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바뀌고 경영 전략이 뒤집어진 사례는 과거 포스코와 KT를 통해 지켜봤었다.
이는 인터넷 댓글조작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드루킹’ 일당이 여권 실세를 포섭하는 과정에서 내세운 논리이기도 하다.
드루킹은 지난 2018년 초 당시 여권 실세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접근하면서 충청남도에 보낸 문서에서 “재벌 오너 일가의 인적 청산을 위해 소액주주 운동과 국민연금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핵심으로 보고 있다”며 “이를 통해 주주총회에서 오너 일가를 축출하고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경영자와 이사회를 분리해 사실상 국민 기업화하는 것이 국민 경제를 위해 좋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세 문제는 비단 기존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오히려 벤처기업 창업이나 중소기업의 성장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경영권의 승계를 불확실하게 만들어 기업가 정신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식에게 상속해주지도 못할 것이라면 누가 모든 것을 걸고 창업에 나설 것이며, 기업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해 일가의 자산을 포기하겠느냐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 상속세 부담으로 대주주 일가가 상속을 포기한 결과 알짜기업이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거나 경영권이 해외로 넘어간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손톱깎이 생산으로 세계 1위 매출을 기록했던 쓰리세븐(777)은 2008년 150억원 가량의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분을 전량 매각한 후 적자기업으로 전락했다. 콘돔업계 세걔 1위였던 유니더스는 2015년 말 창업주 별세로 아들이 최대주주를 이어받았지만 5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부담하지 못해 2년 만에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겼다.
밀폐용기로 유명한 락앤락 창업주도 생전 상속세 부담을 고려해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며 기업승계를 포기했다.
한경연은 “기업승계가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 및 일자리 유지를 통해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활성화 및 대기업으로의 성장이라는 선순환을 위해 국제적으로 높은 상속세율을 OECD 회원국 평균인 25%까지 인하하고, 최대주주할증과세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이미 주식가격에 포함돼 있어 실질과세원칙에 위배되므로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