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銀 평균 외화 LCR 비율 106.3%…올해만 18.1%↓
환율 관련 위험 두 배 가까이 확대…유동성 확보 총력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의 외환 건전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은행들에 잠재된 환율 리스크는 올해 들어서만 두 배 가까이 불어난 실정이다. 코로나19 충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금융권의 불확실성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환율이 더욱 요동치면서 은행들의 위기관리에도 비상이 걸리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4개 은행들의 평균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106.4%로 지난해(124.3%)에 비해 18.1%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은행들의 외화 LCR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만큼 외환 위험 발생에 대한 대비 수준이 이전보다 나빠졌다는 의미다. LCR은 금융위기 시 자금인출 사태 등 심각한 유동성 악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은행이 당국의 지원 없이 적어도 한 달 간 자체적으로 견딜 수 있도록 대비하기 위해 정한 규제로, 수치가 높을수록 유동성 위기 시 대응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은행별로 보면 정도에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곳들의 외환 리스크 대응력이 악화 흐름을 나타냈다. 특히 상대적으로 높은 외화 건전성을 자랑하던 은행들의 지표가 더욱 빠르게 하락한 모습이다.
우선 신한은행의 외화 LCR은 같은 기간 124.8%에서 92.9%로 31.9%포인트 급락하며 유일하게 두 자릿수 대까지 내려앉았다. 국민은행 역시 110.0에서 103.0%로, 우리은행은 110.5%에서 108.9%로 각각 7.0%포인트와 1.6%포인트씩 해당 수치가 낮아졌다. 하나은행의 외화 LCR도 152.0%에서 120.6%로 31.4%포인트나 떨어졌다.
이처럼 은행들의 전반적인 외환 위험이 확대된 배경에는 코로나19에 따른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 이후 환율의 변동성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은행이 감내해야 할 위험도 몸집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와중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외화 리스크는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는 흐름이다.
실제로 은행들이 추산하고 있는 환율 위험이 눈에 띄게 확대된 점은 이 같은 염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한 4대 은행들의 환율 관련 시장리스크 최대예상손실액(VaR·Value at Risk) 평균 증가율은 92.2%에 달했다.
VaR은 과거 각 은행들의 영업 데이터를 토대로 특정 시점에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손실 가능 금액을 추산한 값이다. 이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에서 개발한 기법으로, 금융사의 각종 위험을 계량화하는 대표적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환율과 같은 금융적 위험 요소들의 변동성을 통계적으로 분석·산출해 일정 기간 생길 수 있는 손실액을 보여준다.
이에 은행들도 외화 자산을 끌어 모으는데 주력하며 완충 장치 마련에 애를 쓰는 모양새다. 미리 외화 유동성을 확보해 리스크를 줄여 보겠다는 계산이다. 조사 대상 은행들이 조달해 둔 외화 자금의 올해 3분기 평균 잔액은 145조4468억원으로 전년(125조6038억원) 대비 15.8%(19조9340억원)나 늘었다.
하지만 이처럼 대량의 외화 자산을 추가로 확보하고도 은행들의 외화 LCR 지표가 별반 나아지지 않은 이유는 그 만큼 현금화가 용이한 자산을 끌어오는데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는 LCR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LCR은 단순히 자산 규모를 늘리기 보다는 현금화에 활용하기 좋은 자산을 쌓도록 유도해 은행들의 실질적인 유동성 개선을 이끌기 위한 규제 항목이다. LCR은 국채 등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의 최소 의무보유비율로, 순현금유출액 대비 총 고(高)유동성자산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의 충격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은행들의 외화 유동성 부담이 계속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하반기 들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코로나19가 재확산 국면에 접어들면서 금융 시장의 주름살은 다시 깊어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더해 미 대선을 둘러싼 혼란은 환율 리스크에 새로운 악재가 되는 분위기다. 미 대선 개표가 시작됐던 이번 달 4일 원·달러 환율의 변동폭은 21.7원까지 치솟으며, 코로나19로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지난 3월 20일(26.2원) 이후 최대를 나타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가 유력해지면서 이런 불안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사태와 불투명한 정책 전망 등으로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태다.
미 대선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 이후 올해 내내 외환 시장의 불안은 계속돼 왔다. 연초 1100원대 중반으로 시작한 원·달러 환율은 국내에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3월 중순 1200원대 후반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다 이제는 다시 1100원 초반까지 하락하며 등락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다행히 코로나19 초기에 우려했던 정도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금융 리스크가 누적되고 있다"며 "유동성의 경우 단기간 개선에 한계가 있는 만큼, 은행들로서는 최악의 여건을 가정한 위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