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흐름 좋다는 말은 정신승리" 직격탄
'경제통'답게 文이 제시한 근거 조곤조곤 비판
"니가 가라, 공공임대" 집권세력 뼈아팠던 한방
文정권 정책파탄 정조준…굳세면서도 선명해
문재인정권의 실정을 겨눈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의 칼날이 부쩍 예리해졌다. 최근 부동산과 코로나19 백신 등 현 정권의 정책파탄을 공격하는 유 전 의원의 메시지가 굳세면서도 선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유승민 전 의원은 14일 "경제에 대한 대통령의 말을 들을 때마다, 누가 원고를 써주는지 궁금하고 걱정된다"며 "거시경제의 흐름이 좋다는 식으로 '정신승리'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코로나 확산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거시경제가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어 다행"이라며 "경제의 미래에 희망을 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고 주장했는데, 이같은 자찬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거시경제 흐름이 좋다'는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수출 증가 및 "코스피와 코스닥이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주가 3000 시대 개막에 대한 희망적 전망까지 나온다"는 발언에 대해 '경제전문가' 유승민 전 의원은 조곤조곤 비판을 가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금 GDP를 지탱하는 것은 수출과 재정지출"이라며 "수출은 반도체가 주도하며 '반도체 착시'를 제거하면 결코 좋은 흐름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천문학적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늘려가며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한 점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지금의 주가상승은 '시중에 풀린 돈이 몰려서 올라간 머니 게임'으로, 전문가들은 자산 시장의 거품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유승민 전 의원이 문 대통령을 정책적 역량으로 압도한 것은 모든 국민들이 지켜본 지난 2017년의 대선후보 토론 이래로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다만 "정신승리" 등 날선 발언은 유 전 의원의 스타일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주말에도 유 전 의원은 "니가 가라, 공공임대"부터 시작해 연일 문 대통령을 겨냥한 맹타를 날리고 있다. 유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13평 아파트에 가서는 '4인 가족과 반려견이 살아도 되겠다'고 했다"며 "보통 사람들은 내집 마련의 꿈을 갖고 있는데, 대통령이 '그런 바보 같은 꿈은 버리라'고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퇴임 후 경호동 짓는데만 62억 원이 들어가는 양산 사저로 간다"며, 문 대통령에게 공공임대 입주를 권유하는 듯한 일갈을 날렸다.
이 비판은 집권 세력에게 상당히 뼈아팠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강민석 대변인이 나서서 "국민의힘의 한 정치인이 '니가 가라, 공공임대'라고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유 전 의원이 지적한 사저 경호동 예산 62억 원은 "금액은 맞지만 부풀려진 수치"라고도 항변했다.
청와대가 발끈하자 집권여당과 우당(友黨)들도 벌떼처럼 나섰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 '니가 가라, 공공임대'라며 저주성 비난을 했다"며 "막말을 동원한 정쟁을 국민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김진애 열민당 원내대표는 "'니가 가라, 공공임대'라는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라며 "13평 공공임대는 상대적으로 큰 편"이라고 주장했다. 장외(場外)의 조국 전 법무장관까지 나서서 "'문재인 조지기'의 후과(後果)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집권 세력이 유승민 전 의원에게는 잘 먹히지 않을 '막말' 프레임까지 씌우려 드는 것은 역으로 유 전 의원의 비판이 얼마나 뼈아팠는지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집권 세력의 총반격에도 유 전 의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유 전 의원은 이날도 "코로나 양극화로 일자리를 잃고, 가게와 공장 문을 닫고 절망하는 국민들은 '거시경제 흐름이 좋다'는 대통령 말에 공감하겠느냐"며 "'13평 임대주택에 4인 가족' 만큼이나 공감능력이 부족한 말"이라고 계속해서 문 대통령을 꼬집었다.
야권 잠룡으로 대통령과 직접 맞서는 길 택해
'허수' 아닌 '실수' 유권자 마음 사겠다는 의지
"文, '정책본부장과 토론하라' 피할 수 없을 것
대통령 조준한 유승민 향후 초식 전개 주목돼"
이를 놓고 유승민 전 의원이 범야권의 대권주자로서 야성(野性)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권의 대권주자는 대통령과 직접 맞서야 크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달 16일 여의도 사무실 '희망 22' 개소식을 연데 이어, 18일에는 정치활동 재개를 알리는 기자간담회도 여는 등 9개월여만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에 걸쳐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설문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조사에서 유승민 전 의원은 2.4%에 그쳤다. 그 전달인 10월 25~26일 실시된 같은 설문에서의 3.0%보다 오히려 소폭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 윤석열 검찰총장은 15.1%에서 24.5%로 9.4%p 수직 상승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야권의 대권주자는 대통령과 싸워야 크는데, 윤석열 총장은 국민의힘 밖에서 홀홀단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맞서고 있기 때문에 지지율이 고공 비행을 하는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 대통령의 실정을 선명한 메시지로 비판하기 시작한 유승민 전 의원의 방향은 옳다"고 진단했다.
유승민 전 의원에게는 그간 '범보수 대권주자 중에서 진보층이 개중 낫다고 생각하는 후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쿠키뉴스의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지난 5~7일 범야권 차기 대권주자를 놓고 조사한 문항에서 유승민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는 11.2%의 지지를 얻은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4.1%의 지지를 얻었다.
'대통령 국정 잘함' 응답층에서는 10.4%의 지지를 얻은 반면 '잘못함' 응답층에서는 4.5%였다. 정치성향별로 보수층에서는 7.5%인 반면 진보층에서는 8.4%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문제는 이런 '상대 진영'으로부터의 지지는 대선 본선에 가면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진보층은 보수 후보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개중 제일 낫다' 싶은 유 전 의원을 지지하지만, 대선 본선에서는 결국 진보 후보에게 투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키뉴스·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여야 전체 후보로 대상을 넓힌 결과, 민주당 지지층·'대통령 국정 잘함' 응답층·진보층은 모두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쏠리면서 유승민 전 의원 지지율은 각각 1.6%, 1.7%, 1.4%만 남았다.
이런 점은 유승민 전 의원 본인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의원은 지난달 27일자로 보도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호남 유권자들이 내게 거부감은 없지만 안 찍어준다"며 "선거 막판에 가면 전략적 투표를 한다"고 토로했다.
결국 "거시경제 흐름이 좋다는 것은 정신승리" "니가 가라, 공공임대" 등으로 문 대통령과 선명하게 맞서는 모습은 야권 대권주자로서 '허수'가 아닌 '실수'의 유권자 계층을 공략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부동산·경제정책·코로나 대응 등 정책 영역은 유승민 전 의원에게 가장 강점이 있는 분야다. 또, 국정에 관한 무한책임을 져야할 문 대통령으로서는 지난 대선후보 토론 때처럼 '나 말고 정책본부장과 토론하라'고 피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권을 비판하는 야권 인사들을 향해 '막말 프레임'을 뒤집어씌워 재미 좀 봤던 집권 세력의 입장에서는 이지적인 이미지로 '막말 프레임'이 통하지 않는 유승민 전 의원의 비판은 뼈아프면서도 신경 쓰일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정조준한 유 전 의원의 향후 '초식' 전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