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 장기 전략' 내놓을 듯
韓, 입장 반영됐다며 환영할 가능성
韓 대선 1년 남아…美, '동맹 존중'하되
차기 정권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 가능성
"우리 의도를 (미국이) 수용해서 공동성명이 나왔다."
한미 외교·국방 장관 공동성명에 대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의 평가는 '승전보'처럼 들린다. 중국과 북한 비핵화를 명시하지 않은 공동성명만 보면 이런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나 카메라 앞에 선 미 외교·국방 장관의 '입'은 숨김이 없었다. 두 장관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공동성명에선 한국 입장을 반영하는 '동맹 존중' 기조를 보여줬지만, 마이크 앞에선 속내를 감추지 않은 셈이다.
미국의 '본심'이 어느 쪽에 기울어 있는지는 조만간 공개될 미국의 대북정책을 통해 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결이 다른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큰 틀에선 북한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강조하되 단계적 접근을 시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 경우 문 정부는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이라는 한국 대북노선이 대폭 반영됐다며 환영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추진할 단계적 접근이 실무협상을 기반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바이든 행정부 요직을 꿰찬 외교안보 인사들은 과거 이란핵합의 타결을 위해 2년여의 지난한 협상을 벌인 경험을 갖고 있다. 북한이 이란보다 고도화된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북미가 단기간 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국 대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서둘러 북한과 협상을 벌일 이유가 없다. 이전 정부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한국 정치사를 감안하면 '정책 연속성'에 대한 '위협'은 바이든 행정부에게 상수일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은 겉으론 동맹인 한국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하되 다음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전략적으로 인내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북한의 미사일 시험 소식이 미 언론에서 새어 나온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우리 군은 한미 양국 합의에 따라 관련 내용을 비공개 처리키로 했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미국 고위 당국자 역시 이번 발사를 '통상적 연습'으로 규정하며 도발적 행동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의 '대북 저자세'를 우회적으로 꼬집기 위해 일부러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한국 입장을 수용했다는 한미 공동성명에 '완전히 조율된 대북정책 추진'이 명시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해당 문구는 한국의 독자 대북 드라이브에 미국이 브레이크를 거는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겠다며 운전대를 잡으려 할 때마다 미국이 브레이크를 밟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동맹을 갈취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미 외교·국방 장관은 방한 내내 한국이 인도·태평양과 전 세계 평화·번영의 '핵심축(린치핀)'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런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몰아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원칙에 입각한, 한국과 같은 입장(on the same page)의 대북정책을 예고한 미국은 앞서 나가려는 한국을 붙들어 "어깨를 나란히 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몇 번의 의견조율을 거치며 계절이 두어 번 바뀌면 문 정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