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기업 175개사 현황 분석 결과...도입 공기업 등 9곳 불과
투기자본 위협 우려 여전에 실효성도 논란...주총일 분산 효과적
ESG 공시, 지배구조보고서 별도 작성 부담…단일화·간소화 필요
집중투표제 채택 여부를 기업지배구조 개선 핵심지표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투기자본 위협 우려가 여전하고 지표의 실효성에도 논란이 있다는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일 ‘2020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주요 내용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공시 기업 175개사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핵심지표 중 하나인 집중투표제에 이같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한국거래소가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사항으로 지정한 10가지 핵심원칙의 채택여부를 공시하는 보고서다. 핵심원칙은 15가지 핵심지표로 구성되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의무공시 대상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도 있으나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는지 여부를 공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의무공시가 시행된 지난 2018년 이후 비금융기업 175개사(자율공시기업 12개사 제외)의 3년간 현황을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 15개 지표에 대한 평균 채택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집중투표제 채택’은 3년 연속 채택률 최하위 지표였다.
전체 15개 지표의 평균 채택률은 첫 해인 2018년 52.9%였던 것이 2019년 58.6%, 2020년 64.6%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반면 집중투표제의 경우, 3년 모두 채택률 5% 내외로 평균 채택률 64.6%에 한참 밑돌고 있다. 같은기간 정관에 전자투표 도입 관련 지표가 3배 가까운 높은 상승률(2018년 25.5%→2020년 72%)을 보인 것과는 상반된다.
도입 기업도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강원랜드·대우조선해양·포스코·KT·KT&G·SK텔레콤 등 9곳에 불과하고 SK텔레콤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기업이었다.
보고서는 기업들이 이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사의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살펴보면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는 이유로 경영 안정성 저하와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 방어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경영권 보호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집중투표제 채택은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학계와 글로벌 기관투자자 등 전문가도 유사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소수주주권 보호에는 집중투표제보다 주총 집중일 분산 등의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집중투표제와 관련,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대표적인 갈라파고스식 규제”라고 지적했다.
또 최근 기업 핵심 이슈로 부상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관련, 보고서를 별도로 작성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만큼 이를 보다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두껍게는 약 100페이지 가량 되는데 각각의 두꺼운 공시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기업들에 상당한 행정·비용적 부담도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또 체계적인 ESG 경영전략 수립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공시제도의 간소화·단일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의무공시 외에 오는 2022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 2025년부터 환경정보공시 도입 등이 예정돼 있는 만큼 보고서를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전경련은 “예정대로라면 기업들이 ESG와 관련된 공시보고서 세 권을 내야 한다”며, “기업의 ESG 경영전략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야 효과가 있는데 이 경우 체계적인 ESG 전략 수립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전경련은 핵심지표에 대한 ‘준수·미준수’로 표현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해당 지표들이 법규정도 아닌데 준수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며 “법에서 요구하는 의무사항은 지켜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고 기업들이 최적의 제도를 선택해야 하는 만큼 채택이나 도입같은 객관적인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