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훈련·전략무기 영구 투입 중지 주장도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을 내세워 남측에 대화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지 사흘 만에 미국을 향해서도 '구체적 조건'을 제시하고 나섰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 총회 일반토의 국가별 연설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평화와 화해를 바란다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과 전략 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미국 행정부가 적대적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말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조선(북한)에 대한 이중기준을 철회하는 용단을 보이면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다만 "미국이 현단계에서 적대정책을 철회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미국에 줄곧 요구해온 '적대정책 철회' 기조를 유지하며 구체적 사안으로 △한미연합훈련 중단 △전략 무기 투입 중단을 언급했지만, '이중기준 철회'를 대화재개 명분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셈이다.
앞서 북한은 '이중기준 철회'를 남측에 먼저 요구한 바 있기도 하다.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25일 담화에서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만 비로소 북남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종전선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 등의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특히 그는 공정성·존중과 관련해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하며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군사도발'이 아닌 '자체 국방력 강화'로 인정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부부장은 "우리를 향해 함부로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며 북남 간 설전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며 "다시 한번 명백히 말하지만 이중기준은 우리가 절대로 넘어가줄 수 없다"고 했었다.
북한이 한미 양국에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한 것은 김 대사 연설에 앞서 진행된 미사일 발사와 연관돼있다는 평가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이날 오전 6시 40분경(한국시간)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쪽으로 미상 발사체 1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는 김 대사 연설 약 40분 전에 이뤄진 것이다.
결국 북한이 군사도발을 감행한 뒤, '자위권에 따른 군사행동을 인정하라'고 한미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이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를 '군사도발'로 규정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무엇보다 이번 미사일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아 대화재개를 바라는 한국과 원칙론을 견지하는 미국의 '판단'이 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북한이 국제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한미공조에 균열을 내려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한미는 전날 개최한 국방 분야 협의체에서 북한의 최근 행보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며 입장차를 확인한 바 있다. 우리 군 당국은 김여정 부부장의 유화 담화에 주목하는 견해를 밝혔지만, 미국 측은 북한이 최근 발사한 미사일이 동맹 및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2주 전 △장거리 순항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따라 쏘아 올려 국제사회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편 김성 대사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의 적대정책으로 핵개발을 하게 됐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핵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거론하며 "우리의 전쟁 억지력에는 강력한 공격수단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우리가 핵을 가져서 미국이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이 우리를 적대시해 우리가 핵을 갖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이나 남조선 등 주변국가의 안전을 절대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