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가 언어 바꾸면 사건 성격 다르게 보여
거대한 권력자의 고소 남발, '민주주의 실현 위한 운동' 아닌 '입막음 도구'
이름과 실재의 일치, '정명(正名)'이 '정도(正道)'의 시작
권력자가 언어를 바꾸면 사건의 성격이 다르게 보인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는 히틀러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어떻게 교묘하게 '언어규칙'을 만들었는지 잘 보여준다. 유대인 학살은 '최종해결책'이나 '안락사 제공'으로 표현됐다. 히틀러의 모든 행위는 인류공생과 역사발전을 위한 '신의 영역'으로 포장됐다. 우리의 지난 날도 예외가 아니다. 엄혹한 독재시대의 고문기술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오롯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 행위'로만 인식해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정상적인 공무 집행'으로만 간주했다고 한다. 이렇듯 언어의 왜곡은 사건을 허위와 날조로 둔갑시키는 것은 물론, 양심의 가책을 없애주고 인간성마저 말살시켰다.
언어를 바꾸는 기만은 작금의 시절에도 여전하다.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재명 경기지사는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대장동 개발은 성남시장 시절 최대 치적"이라고 규정했다. 대장동 개발이 5503억원을 시민 이익으로 환수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익환수 사업이란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지사는 화천대유 관계자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본 사업을 두고도 자신을 설계자라고 당당히 밝혔다.
하지만 대장동 개발 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민간 '꾼'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겨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줬다. 2015년 사업 초안에는 민간업자 독식을 막기 위한 '초과수익 환수' 조항이 담겼으나 해당 조항이 어찌된 일인지 뒤에 삭제됐다고 한다. 이것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주도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과연 유 전 본부장 혼자 이 엄청난 규모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 지사는 또 '고소왕'이라는 별명에 대해서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거대한 권력자의 고소 남발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공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제기한 상대방을 사법적으로 괴롭혀 끝내 입을 막아버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교단의 상식을 깨고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이단자로 몰려 화형당할까 고민했을 코페르니쿠스처럼, 시민들 역시 매사 위축돼 엄격한 자기검열을 강화하게 되고 의견과 주장으로 자유로워야할 공론의 장은 눈치나 살피며 주눅들 수 밖에 없다. 시민들은 각종 사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알기 어려워지고 편향된 정보로 민의는 쉽사리 왜곡당한다.
공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이름과 실재의 일치, '정명(正名)'이 '정도(正道)'의 시작이다. 이 지사는 돌연 대장동 개발 특혜 사업에 참여한 민간 업체의 추가 이익금 배당을 중단하고, 개발 이익 전액을 환수하라고 성남시에 요청해 사업에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말과 실제를 일치시켜야 하지 않을까. 공인으로서의 고소 남발로 무조건 법의 영역으로 끌고가기보다는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답게 정치의 영역에서 푸는 것이 더욱 온당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