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규 검찰 압수수색 전 휴대전화 창 밖으로 던져…"술 취해 홧김에"
전문가 "증거은닉 행위 자체는 죄 아니지만…다른 사람과 짜고치면 범죄"
"유동규와 사전에 짰다는 사실 인정돼야…단순 습득이면 점유물이탈횡령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으로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창밖으로 휴대전화를 내던진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한 남성이 문제의 휴대전화를 자연스럽게 주워가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조직적으로 증거은닉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18일 TV조선이 보도한 CCTV 영상을 보면 검찰이 유 전 본부장의 자택 압수수색을 벌였던 지난달 29일 오전 8시 19분쯤 인도 위로 한 휴대전화가 떨어졌다. 이 휴대전화는 유 전 본부장이 용인시 한 오피스텔 9층에서 던진 것으로 대장동 의혹을 밝혀 낼 핵심 증거물로 지목됐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휴대전화에 관심을 보이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약 20분 뒤 우산을 쓴 남성이 나타나더니 망설임 없이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이 남성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곧바로 차도를 가로질러 반대편 차선을 지나 CCTV 영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휴대전화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검찰은 뒤늦게 인근 도로를 수색했지만 끝내 휴대전화를 찾지 못했다.
이후 시민단체로부터 유 전 본부장 휴대전화 증거은닉 등 혐의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은 하루 만에 휴대전화를 습득한 남성을 찾아내 조사하고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남성은 "길에 휴대전화가 떨어져 있어서 그냥 가지고 왔다"며 "유 전 본부장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본부장은 자신의 자택 앞에 모인 취재진에게 휴대전화를 감추려 한 이유에 대해 "그럴 사정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는 "최근에 바꿨던 휴대전화를 쓰다가 기자들의 전화가 계속 와 압수수색 전날 술에 취해 홧김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유 전 본부장과 휴대전화를 주운 문제의 남성이 입을 맞춘 정황이 포착될 경우, 증거은닉죄 및 증거은닉교사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형법상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일례로 지난 7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자택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동양대 연구실 컴퓨터 본체를 숨겨준 자산관리사 김경록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 받은 바 있다.
또한 정 교수 부부는 '방어권 차원에서 증거인멸을 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누군가에게 시켜서 증거를 인멸한 행위는 방어권을 넘어섰다고 보고 증거은닉 교사 혐의에 유죄 판단을 내렸다.
설령 남성이 우연히 휴대전화를 주웠다고 해도 점유이탈물 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 휴대전화를 습득하고도 원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점유물이탈횡령죄로 최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게 된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 소속 구주와 변호사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던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 그 자체도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인데, 떨어진 휴대전화를 가지고 간 정황으로 보아 증거인멸 시도를 의심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이어 "휴대전화를 우연히 봤다면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보려는 노력을 했을 것 같은데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의심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서로 짜고 가져갔으면 증거은닉의 공범이지만, 모르고 가져갔다면 점유이탈물 횡령죄"라며 어느쪽이든 남성의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관측했다.
법무법인 하나 강신업 변호사는 "본인이 본인의 증거를 없애는 행위는 방어권 행사 차원으로 보고 범죄가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범죄와 관련한 증거물을 숨겨달라고 부탁받아 증거를 숨기면 증거인멸죄에 해당한다"며 "단순히 남의 물건을 그냥 가져간 경우라면 점유물이탈횡령죄다"고 설명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 역시 "남성과 유동규가 사전에 짰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증거은닉죄로 걸리겠지만 이는 앞으로 수사에서 밝혀야 할 사안"이라며 "현재로서는 남의 물건을 습득하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데 임의로 가져갔기 때문에 점유이탈물 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유 전 본부장이 집어던진 문제의 휴대전화는 최근 개통한 최신형 휴대전화로, 파손상태가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본부장은 휴대전화의 잠금을 푸는 비밀번호를 제공했으며, 경찰은 파손 수리를 마치면서 본격적인 포렌식에 착수했다.
경찰은 유 전 본부장의 통화 내용과 파일을 살펴보면서 대장동 의혹의 또다른 관계자나 '윗선'을 파헤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아울러 휴대전화를 주운 남성과 유 전 본부장과의 관계가 있는지, 휴대전화 습득 절차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도 조사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