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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전쟁-①] 美 빗장 걸고 中 침투하고…車업계 '브레이크'


입력 2022.08.24 06:00 수정 2022.08.24 08:57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美 IRA 법안으로 中 제외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시화

막대한 광물 무기로 中도 韓 포함 시장 공략 가속화할 듯

현대차그룹 등 현지 투자 '속도'…정부, 규제 유예 목소리 내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1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AP/뉴시스

글로벌 패권을 놓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이 이번에는 공급망으로 맞붙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중국 견제에 나섰고, 중국은 막대한 광물을 무기로 보란듯이 글로벌 장악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급망을 둘러싼 미·중의 힘겨루기가 가열되면서 국내 자동차·배터리산업의 생존방안 마련이 시급해졌다. 3회에 걸쳐 국내 주요 산업들을 점검하고 돌파구를 모색한다.<편집자주>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총성 없는 전쟁이 이번에는 전기차 공급망으로 옮겨붙었다. 무역 마찰 갈등에서 시작된 대립이 이제는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겠다는 명분 하에 원자재 전쟁으로 격화된 것이다.


최근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미·중 갈등을 부추길 핵심 법안으로 부상했다. 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광물 80%를 장악한 중국을 철저히 견제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글로벌 판도를 바꾸겠다는 것으로, 중국산 의존도가 적지 않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비상등이 켜졌다. 미국 내 전기차 사업장이 없는 현대차그룹도 기로에 놓인 것은 마찬가지다.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지난 16일부터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를 줄이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 달러(479조원)를 투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북미산 원자재 비중이 높은 기업에 신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 지급이다.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제련한 광물 비중을 40%로 늘리고, 배터리 등 주요 부품도 50% 이상을 북미에서 생산한 제품을 장착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한다.


원자재·부품 수급 대상을 미국에 우호적인 나라들로만 한정해 사실상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뿐만 아니라 최종 조립도 북미로만 한정해 그 외 지역에서 조립되는 차량은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었다.


수출로 미국에 전기차를 판매해왔던 현대차·기아는 말 그대로 날벼락을 맞았다. 당장 미국 정부가 연말까지 7500달러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전기차 모델(21개)에서 현대차·기아 모델은 제외됐다.


순수 전기차인 아이오닉5, EV6를 비롯해 코나EV, GV60, 니로EV마저 모두 제외되면서 리비안, 루시드 등 타 브랜드와의 가격경쟁에서 밀리게 됐다. 판매가 직격탄을 맞으면 올 상반기까지 끌어올린 미국 시장 점유율(약 9%) 유지도 불가능하다.


아이오닉 5(위)와 EV6(아래) ⓒ현대차·기아

고강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에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공장 완공 일정을 반년 앞당기기로 했다. 당초 현대차는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에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용 전기차 공장 설립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정을 조정하지 않으면 가격 경쟁에서 열위에 놓이게 돼 현지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지속 흘러나왔다. 상업가동을 시작하는 3년 뒤부터 아무리 디자인·품질 경쟁력이 앞서는 전기차를 내놓는다한들 그 사이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아올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의 팻 윌슨 경제개발부 장관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난 것도 이 같은 전용공장 일정 조정과 맥락을 같이 한다. 현대차는 전기차 공장 설립 뿐 아니라 미국이 원하는 북미산 원자재 수급을 위해 국내 배터리사와 빠르게 손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공장 완공 전까지 생기는 생산 공백을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 정부는 IRA 법안을 두고 미 통상당국에 한미 FTA와 WTO(세계무역기구) 협정 등 통상규범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보조금 지급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국내 업체들이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등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뉴시스

미국이 북미산 제품만 인정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면, 중국은 막대한 광물을 무기 삼아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중국산 비중이 워낙 높은 만큼 가격 경쟁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국내 배터리 핵심 원료로 쓰이는 산화리튬과 수산화리튬만 하더라도 중국산이 84%로, 중국 정책에 따라 원료 가격은 얼마든지 출렁일 수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생산하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중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실제 중국 전기차 시장 상위 5개 브랜드 중 4곳이 중국 전기차업체로, 테슬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국 토종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원료-부품-전기차로 이어지는 공급망 구축에 가장 앞장서있는 중국은 '가성비'를 무기로 국내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비야디)는 최근 서울에 사무실을 내고 국내 시장 진출 채비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판매 라인업이 전기버스 등 상용차 중심에서 승용차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는 내년부터는 BYD 세단을 국내 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진단한다.


이미 중국산 전기 상용차(버스·화물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산 전기 사용차 판매대수는 1351대로 전년 동기 보다 749% 급증했다.


국내 전기 상용차에서 중국산 점유율도 작년 1.1%에서 올해 6.8%로 5.7%p 늘었다. 중국산 상용차가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장악력을 늘리는 데는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모델, 국내 보조금 정책이 두루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 용산역 전기차충전소에서 전기차들이 충전을 하고 있다.(자료사진)ⓒ뉴시스

BYD 역시 대당 1900만원부터 시작하는 '가성비' 정책을 내세워 국내 전기차 시장을 집중 공략해 나갈 공산이 크다. BYD를 필두로 중국산 브랜드가 '저가 제품'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두드린다면 국내 전기차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중국 내에서 입지가 줄어든 현대차그룹과 대조적이다.


중국 내에서 현대차·기아의 판매대수는 2016년을 114만대에서 지난해 38만대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품질 우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애국주의 소비'가 워낙 강한 탓에 반등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막대한 공급망을 무기로 국내 안방을 침투하는 중국과 북미산 전기차만 우대하는 미국의 패권 다툼에 낀 국내 자동차 산업이 이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성장은 둔화되고 결국은 도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기업이 이같은 위기에 긴밀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협력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IRA 세부 조항은 아직 세팅되기 이전이므로, 국내에서 좀 더 유리하게 조율해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현대차 역시 생산 공백 기간 보조금 일부를 지원하는 프로모션 등으로 시장점유율 방어에 나서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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