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적 팬덤’이 되살린 보스 정당
당 유력자들이 반법치 부추기나
‘좀비’라 하는데도 입 닫고 있다니
더불어민주당의 5선 중진, ‘미스터 쓴소리’ 이상민 의원은 “(민주당이 제대로 되려면)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22일 보도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기사다. 민주당이 ‘1인 정당’을 탈피하고 가치 중심의 ‘노선 정당’으로 가야하는데 이 대표 때문에 안 된단다. ‘1인 정당’ 혹은 ‘보스 정당’체제는 한국 정당정치의 후진성 그 자체였다. 그게 노태우와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시대를 거치면서 해소되는가 했더니 어느새 더 강고하게 1인체제가 굳어졌다. ‘악질적인 팬덤’ 때문이라고 한다.
‘악질적 팬덤’이 되살린 보스 정당
그는 작년 7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의 대표직을 노리고 있던 이 상임고문과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격한 표현으로 공격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를 위해 민주당을 탈당한 민형배 의원과 ‘처럼회’를 향해서도 호되게 비난했다.
월간조선 인터뷰어가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 대표 소환이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는데요”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중진의원의 말이라는 게 놀랍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민주당에서 건재하다는 건 더 놀랍다. ‘악질 팬덤’의 공격이 예사로울 리가 없다. 이른바 ‘개딸’을 비롯한 이 대표 극렬 지지 세력으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흔한 말로 민주당이 당장 ‘폭망’하지 않는 것은 이 의원 같은 소신파가 몇 명이라도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당 유력자들이 반법치 부추기나
이 대표가 언제 민주화 투사 역할을 했는지 내 기억에는 없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의 열기가 고조되던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서서 ‘사이다 발언’인가를 하면서 성남시민 이외의 유권자들에게도 이름을 각인시켰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안희정·최성 등과 후보 경선에 나서 겨우 3위에 오름으로써 존재감이 ‘별로’였음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대선 후보 경쟁자였다는 경력에 힘입어 경기도지사가 됐다.
이후의 이력을 되짚어볼 필요는 없겠다. 어쨌든 그는 작년 20대 대선에서 얻은 ‘0.73%P 석패’를 간판으로 내세우며 보궐선거 뻐꾸기 출마(자신의 연고지를 피해서 무연고지로 간 것이, 남의 집에 알을 낳는 뻐꾸기를 연상시켰다)로 국회에 진입한데 이어 당 대표직까지 차지했다. 예사 정당이 아니라 의석 169석의 거대 정당이다. 당원들의 선택이었으니 가타부타할 일은 못된다. 그러나 둘러메고 온 보따리가 문제였다. ‘다채로운 범법 혐의’들이 가득 들어 있었던 거다. 그는 이 보따리를 턱하니 풀어놨다. 당이 합심해서 이 짐들을 도맡아 지라는 뜻이었다.
이 당의 비대위원장을 지낸 우상호 의원은 지난 6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이 대표 소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해찬 당 상임고문도 12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나가 거들었다. 그는 성남FC 문제와 관련,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공연한 검찰 압박이고 위협이다. “좋은 말할 때 여기서 멈춰”라는 겁박으로 들린다. 직전 정권에서 행세깨나 했던 사람들이다. 더욱이 이 고문의 경우는 과거에 노무현 정권 실세총리로 ‘2인자 행세’를 톡톡히 했었다. 그런 사람이 나서서 검찰의 정당한 업무수행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반(反)법치’ 선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노무현·문재인 정권의 핵심부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등골이 서늘해진다.
‘좀비’라 하는데도 입 닫고 있다니
당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이라고 이 국면에서 침묵을 지킬까. 그는 17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잇따른 소환과 관련) “이런 과정을 다 극복하고 나면 이 대표는 천하무적이 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불러왔다.
이 대표의 귀에 달게 들리기만 한다면야 DJ든 누구든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배짱인 듯하다. DJ가 개인 비리 혐의로 정치적 사법적 박해를 받았다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 의원의 기억에만 그렇게 박혀 있는 건가?
이상민 의원이 “이런 야당대표가 어디 있었느냐”고 되물은 것은 어떻게 이런 사법적 부담을 잔뜩 안은 사람이 당권을 장악하게 됐느냐는 탄식으로 들린다. 그냥 혐의만 많은 것도 아니다. ‘이재명 의혹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사람 4명이 사망했는데도 명확한 배경이나 원인이 밝혀졌다는 말은 없었다. 진실은 검찰수사와 법원의 판결로 밝혀지겠지만 거대정당 대표의 저 다양한 부패 비리혐의는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일이다.
민주당 사람들은 ‘괴물과 좀비가 가득한 소굴’이라는 당 중진 의원의 지적에 대해 뭔가 말을 해야 한다. 아니라고 여긴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면서 반박할 필요가 있다. 내심으로 그런 말을 들어 싸다고 생각되면 부끄러워하는 표정이라도 짓는 게 도리다. ‘악질적 팬덤’에 기죽고, 당 대표의 총선 공천권에 떠느라 할 말 못하겠다면 정치를 포기하는 게 옳다.
‘괴물’은 그래도 나은 표현이다. ‘자아’에 대한 인식은 있을 테니까. ‘좀비’는 살아 있는 ‘송장’을 가리킨다. ‘자아’가 없이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다. 당 대표와 그 팬덤의 위세에 눌려, 지도부에 대드느니 차라리 ‘좀비’로 불리며 살겠다면 그야 어쩌겠는가. 그러시라고 할 수밖에…. 그게 아니라면 정치인으로서의 자아와 자존감을 자신의 의지로 되찾을 때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